지난번 자당님 장례에서 뵙고 벌써 철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별고 없으신지요. 보내 주신 메시지를 받고 바로 답을 드리지 못해 미안 합니다. 저 나름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면 변명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메시지에 쓰신 회장님의 여러 의도를 이해하려 저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 회장님께 개인적으로 보내드린 저의 답에 몇 마디를 첨부하여 이 지면에 싣습니다. 회장님은 이미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라는 저의 판단에 따른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잘 사는 것 인지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이 하시는 일을 항상 존중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를 표현하고 행동에 옮기는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소통과 대화가 없는 시대에 사는 것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소통과 대화가 없다고 모여서 살벌한 구호를 외친다고 대화가 됩니까? 광화문 앞에 모인 그 인파들이 과연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인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모든 대화는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자신과의 대화가 성숙한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외치지 않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소크라테스가 무리지어 외치고 다녔습니까?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간음한 죄로 끌려나온 한 여인을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을 끌어냈던 성난 군중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버린 것을 아시지요? 예수님은 성난 군중들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이천 오백년도 넘은 저 세월의 뒤 안에 부처님이 계셨습니다. 무리와 군중들을 떠나서 한 보리수나무 그늘의 절대 적막한 고독 속에서 해탈하시고 성불하지 않으셨나요? 모두 자신과의 내면의 대화에서 시작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해탈성불 했다는 공통점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홀로 떨어져 이기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리를 짓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해와 사랑과 자비가 없는 모든 노력이나 운동이나 혁명은 그 따르는 무리의 수와 상관없이 실패하기 마련이요, 결국에는 인간을 비인간화 하는 도구에 불과 하다는 것이 역사의 증언이요 또한 저의 생각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뿐 입니다.
저는 예술가들을 존경 합니다. 그 분들은 내면의 기쁨과 슬픔 치열한 갈등과 대화를 인류 모두가 이해하는 공통언어인 예술로 승화 시키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외치지 않으나 온 세계가 그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런 침묵속의 소리가 세상을 변화 시키는 참된 힘이 아닐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민족과 국가를 외치는 사람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민족사랑 국가사랑이야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일 아닌가요? 다 아는 일을 외치고 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주변이나 조상의 뼈가 묻힌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미국 땅에 살면서 바다 건너에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까? 자기가 사는 동네의 시의원 이름도 알 듯 모를 듯한 분들이 바다 건너 국회의원 선거에 관여하고 누가 당선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어떤 것이 신문에 나왔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 뉴스는 과연 모두 진실한 것입니까?
저는 그 뉴스들이 사실이냐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과 사실의 차이는 마치 동일한 사건을 보는 시각의 차이와 비교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수고롭게 가다듬은 옥토를 마음속에 가진 사람과 미워하고 거친 비판을 업으로 삼아 부서진 자갈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보는 시각을 말합니다.
손에 돌을 든 사람들이 이기는 듯 하지만 과연 그런 것 입니까? 세상은 고해요 비극의 무대인 것 같습니다. 의견이 다르면 적이 되고, 적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단순 논리가 모든 인간 비극의 근본이 아닐까요?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흐르는군요. 덥던 여름 소소로운 가을 다 지나가고 눈 내린 아침길이 미끄럽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요? 한 번 수이 만나 예전처럼 긴 회포를 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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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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