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시대의 변화 속도다. 지난해 마포에 있는 서울 가든호텔에서 열린 동창들 모임에 갔을 때의 일이다. 호텔 복도에 ‘어르신네를 위한 남성 요리교실’이라는 게시판이 붙어 있었다. 어르신네를 위한 남성 요리교실? 이거 정말 재미있는 모임이네. 더구나 무료라는 단서까지 붙어 있었다. 호기심에 그 요리교실을 잠깐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30여명의 백발노인들이 요리사 모자를 쓰고 강사의 지시에 따라 채소와 고기를 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텔 주방장인 듯한 강사가 노인들에게 칼 쥐는 법에서부터 야채 다루는 법에 이르기까지 요리 기초상식을 설명하고 있었다. “시든 나물을 싱싱하게 만들려면 설탕물에 잠깐 담가 놓아라” “양파껍질을 쉽게 벗기려면 물에 담갔다가 벗겨라” “청양고추를 만지고 난 후 손이 매우면 쌀뜨물에 씻어라”등등 재미있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이 모임이 너무나 신기해 동창들과 만났을 때 이야기했더니 그들은 그걸 가지고 뭘 놀라느냐는 표정이다. 전국 각 도시에서 노인들과 아버지들을 위한 요리교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호텔에서 요리강습 하려면 꽤 돈이 들텐 데 어떻게 무료냐”고 물었더니 LG등 가전제품, 제일제당, 롯데, 풀무원 등 식품업체에서 앞 다투어 후원한다고 했다.
한국 전체가 요즘 요리강습으로 들썩들썩이다. 강호동이 새로 MC를 맡아 진행하는 쿡방 ‘한식대첩 4’라는 프로는 인기 연속극을 능가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탤런트 소유진의 남편인 백종원의 요리교실이 주부들과 젊은 남성들에게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셰프가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백종원 때문에 대한민국이 맛있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가 경영하는 식당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1,200여개나 되어 벼락부자가 되었다. 며칠 전 국감에서는 백종원의 식당 때문에 전국의 국수집, 김밥집, 쌈밥집등이 불경기에 접어들었다며 백종원의 식당기업이 재벌화 되어가고 있는 현상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미남인 남성보다 요리 잘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인기를 끄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가정적인 남성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중국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남성은 ‘상하이 남자’라고 한다. 왜냐하면 상하이 남자들은 부엌일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여성들에게는 상하이 남자가 결혼상대 최우선 순위에 올라있는 모양이다. 무뚝뚝한 러시아 남성과 너무나 비교가 된다.
남성 요리시대가 열리고 있다. 왜 한국에 남성요리 강습 붐이 일어나고 있을까. 부부 맞벌이 시대와 독거노인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직장여성이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지금은 여성이 아이를 낳고도 계속 직장에 다닌다. 여성이 돈도 벌고, 아이도 키워야하고 밥도 해야 한다. 감당하기 힘든 노동량이다. 이에 따라 남성이 여성이 맡았던 부엌일과 아이 키우는 일을 나누어 짊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과거에는 ‘요리교실’하면 예비신부들이 다니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할아버지들과 젊은 아버지들로 강의실이 꽉 차있다. 은퇴한 남성들이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만드는 것이 부인에 대한 훌륭한 봉사로 인정받는다.
100세 시대의 새로운 풍토다. 몇 년 전까지는 TV에서도 ‘먹방’(먹는 방송)이 유행이었는데 지금은 ‘쿡방’(음식을 만드는 방송프로)이 인기다. 강호동까지 ‘쿡방’에 뛰어 들었으니 말이다. “군자는 부엌을 멀리해야 한다”는 속담을 입에 담았다가는 우스꽝스런 사람 취급 당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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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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