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실무자 회담에서 북한의 박영수 단장이 “우리 주체의 나라 북조선은 전쟁의 벌집을 터트리려는 남조선과 미국의 책동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송 선생(한국 측 수석대표)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극언을 한 것이 1994년 3월이다.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거부하면서 때를 맞추어 일어난 사건이다.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자 페리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쟁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각오가 되어있다” 말했다.
이어 클린턴 대통령이 영변의 북한 핵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폭격을 준비하라는 비밀명령을 내린 것이 94년 6월이며 당시 레이니 주한 미대사가 자신의 가족들을 미국으로 철수 시켰을 정도였다. 결국 미국의 북한 핵시설 폭격은 김영삼 대통령의 결사반대로 클린턴이 작전취소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22년만인 지난주 북한은 제5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핵탄두의 소형화 성공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만 해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까 봐 걱정한 것이지 북한 핵무기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한국이 느끼지 못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해도 운반수단이 없어 협박용에 불과하다는 것이 한국정부의 자세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이 안된다고 과소평가 하면서 김정일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한술 더 뜨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남북관계 성과 내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 지금 와서 증명 된 셈이다.
그런데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대표와의 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도록 표준화 규격화했다고 공언했듯이 북의 핵미사일은 단순한 협박이나 협상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심각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북의 ‘미사일 탑재 핵탄두 실험 성공’을 한국정부가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는 왜 의미심장한가. 북한이 미국과 직접 협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앞으로 북한은 대륙간탄도탄까지 개발하여 워싱턴DC 공격까지 가능하다고 큰 소리 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허풍으로만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북한은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과 영구평화조약을 맺으려는 것이 김정은의 목표인 것 같다. 미국도 골치 아프니까 언젠가는 북한과의 평화협상에 응할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경우 벌써 한반도의 미국 핵우산 철거를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평화협정에서 북한이 노리는 것은 주한미군 철수다. 평화협정을 체결해 한반도에 긴장이 없어졌는데 왜 미군이 주둔해야 하는가를 중국 러시아와 함께 국제여론화 할 것이다. 미군이 철수하면 한국은 북한 공갈에 질질 끌려 다닐 것이고 종북세력이 판을 칠 것이다. 북한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같은 한반도 정세다. 전쟁 없이도 북한의 뜻대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계산이다.
핵무기의 미사일 탑재와 소형화가 이루어진 마당에서 북핵에 대한 대책은 과연 무엇인가. 없다. 미국의 첨단무기 과시도 본 영화 또 보는 기분이고 유엔안보리의 강경제재도 녹음기를 재탕하여 듣는 느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전 원로정치인들과의 모임에서 북핵문제에 관해 언급했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는 협상이나 대화로는 북한의 핵을 포기 시킬 수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정권이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핵 포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핵에 관한 가장 솔직한 한국지도자의 견해이며 명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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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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