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일평생 본 영화 중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는?”하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찰톤 헤스턴이 주연한 ‘벤허’(59년 제작)를 꼽는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미국영화협회는 ‘벤허’를 불후의 명작 100편 중의 하나로 선정한 적이 있다. 무성영화 시대에 제작된 ‘벤허’(라몬 나바로 주연)도 대히트였으며 1899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진 연극도 초만원을 이루며 22년간이나 계속되는 성황을 이루었다.
영화와 연극뿐이 아니다. 소설도 기록적이다. 1880년 출판되자 ‘Uncle Tom‘s Cabin’(해리엇 스토우 작)을 누르고 19세기의 베스트셀러로 등장 했으며 한때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1위를 내주었으나 59년 영화 ‘벤허’가 나오자 다시 선두를 차지했다.
‘벤허’는 픽션이다. 소설이다. 픽션인데도 많은 감동을 준 것은 그 내용이 드라마틱하면서도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고 수많은 무신론자들이 크리스천이 되었으며 그랜트 대통령은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읽을 것을 적극 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화제를 모은 것은 ‘벤허’의 저자 루 월레스가 남북전쟁에 참가한 북군의 장군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도 ‘벤허’를 예수의 일생에 접목 시키는 뛰어난 재질을 보였다. 이스라엘에 한번 가보지도 않고 로마 지배 하의 예루살렘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월레스는 워싱턴 DC에 있는 미 의회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져 ‘벤허’를 썼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가필드 대통령은 ‘벤허’에 깊은 감명을 받아 월레스를 오토만 제국(터키)대사에 임명했을 정도다. 그가 아랍 문화를 너무나 잘 이해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원작 ‘벤허’는 영화 ‘벤허’와 내용이 좀 다르다. 예수의 일생이 상당부분 그려져 있으며 벤허가 메살라와의 전차경기에서 이긴 후에는 예수를 따라다니며 이스라엘 독립운동을 편다. 그러다가 예수의 십자가 희생을 목격한 후 사랑과 용서가 예수의 정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복수를 포기, 사랑을 실천하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네로 치하 지하동굴 카타콤에서 고생하는 기독교인들을 돕기 위해 전 재산을 정리한 후 배를 타고 로마로 떠나는 것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찰톤 헤스톤의 영화‘벤허’는 너무 흥미위주로 꾸며져 메살라에 대한 벤허의 복수에만 앵글이 맞추어져 있고 예수와 벤허의 관계가 자세히 그려져 있지 않다. 종교적이라기보다는 드라마적이다. 그러나 원작은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그렸으며 인간의 진정한 만남은 상호 간의 눈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서 유대인인 벤허가 유대교를 버리고 크리스천이 되지만 작가 월레스도 소설을 쓰기 위해 예수를 연구하다 그의 일생에 감동되어 크리스천으로 다시 태어난다. ‘벤허’는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소설책이다. 그 내용도 인간의 다시 태어남이다.
지난주 개봉된 잭 휴스턴 주연의 ‘벤허’가 흥미위주가 아닌 종교적인 앵글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벤허’라고 선전하길래 기대를 갖고 영화관에 갔더니 템포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드라마도 약하고 종교적인 이미지도 약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희미한 영화였다. 극장 좌석이 텅텅 비어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벤허와 메살라가 어깨동무하고 다시 옛날 친구로 돌아가는 내용인데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착하게만 살면 기독교인의 본분을 다하는 줄로 알고 있는 오늘의 크리스천들에게 이번 잭 휴스턴의 ‘벤허’는 어떤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기대 이하였다. 59년 ‘벤허’의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역시 명감독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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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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