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부인회 설자 워닉씨
▶ 40년간 노인복지 활동
“1970년대 워싱턴주 타코마에 있던 한국 여성들의 작은 친목모임이 이제는 12곳의 카운티와 시에 사무소를 두고 1,300명을 고용하는 대형 복지기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말하죠”
40여년간 대한부인회를 이끌어온 설자 워닉(74•사진)씨는 대한부인회가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는 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달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워닉씨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976년이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한 그는 1968년 결혼을 했고 한국에서 두 딸을 낳고 10년 가까이 살다가 워닉씨의 부모가 세상을 뜨면서 도미했다. 처음 밟은 미국 땅에서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그는 초등학교에서 무급으로 보조교사 일을 시작했고, 이후 시애틀에 있는 대학교에서 정식 코스를 밟아 20개월 만에 미국 교사 자격증을 땄다.
정식 교사가 된 그는 다시 학교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인 여성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시에도 대한부인회는 존재했지만 매달 한 번 만나서 밥 먹고 향수나 달래는 친목단체였다.
“그 지역에 큰 미군 기지가 두 개나 있어서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이들이 영어도 잘 못하고 서구문화에도 무지하니까 미국 남편들이 깔보고 폭력을 휘둘렀어요. 이들이 폭력을 당할 때마다 통역해 주고 돕는 일로 시작해 대한부인회가 봉사단체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단체의 활동폭과 지원대상이 넓어지면서 회원들의 사비를 털거나 떡, 김치를 팔아 모금하는 형식으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1980년대 초 워닉씨가 타코마 카운티 복지국에 이사로 들어가게 돼 6년 간 일하면서 복지기금, 보조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워닉씨는 카운티 당국에 노인 복지 보조금을 신청해 3만5,000달러를 처음으로 받았다. 그 돈으로 대한부인회에서 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을 시작했고, 가난한 노인들이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추가로 15만달러를 받아내 간병 서비스까지 확대했다. 그렇게 노인 간병 서비스는 대한부인회의 최대 복지사업이 됐다. 현재 대한부인회가 12곳에서 운영하는 노인 돌봄센터는 300여명의 직원과 1,000여명의 간병인을 고용하고 있다.
워닉씨는 1980년대 초부터 14년간 워싱턴 주지사의 아시안 자문위원으로도 일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1995년에는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아파트 건축 사업에 보조금 지원을 신청해 연방 정부에서 220만달러를 따내기도 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