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호숫가를 걷다가
나는 굴뚝새와 사랑에 빠졌어.
오후엔 고양이가 주방의 식탁 아래 떨어뜨린
쥐와 사랑에 빠졌지
가을 저녁의 그늘 속에선
양복점 창가에서 늦도록 일하는
여자재봉사가 좋아졌고
그 다음엔 한 사발의 스프,
해전의 연기처럼 김이 피어오르는
한 그릇의 스프와 사랑에 빠졌어
내 생각엔 이런 게 가장 좋은 사랑이야.
보답 없는, 선물 없는.
쌀쌀한 말도, 의심도,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침묵도 없는
밤나무와의 사랑
재즈 모자, 운전대에 오려진 한 쪽 손과의 사랑
욕망도 없고, 문을 쾅 닫아버리는 일도 없는..
난쟁이 오렌지 나무와의 사랑과 같은
깨끗한 하얀 셔츠, 뜨거운 저녁의 사워,
플로리다를 가로지르는
하이웨이
기다림도, 씩씩거리는 일도, 원한도 없는,
그저 간간의 짜릿한 통증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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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일상을 통해 인간 본연의 문제를 깊이 조명해 내는 빌리 컬린즈가 이번엔 사랑을 이야기 한다. 문을 쾅쾅 닫으며 사랑하는 이와 싸워 본 사람, 전화 속의 쌀랑한 침묵에 시달려본 사람, 선물 챙기느라 허덕여 본 사람, 그리고 사랑이 변하여 원한이 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이들에게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뜨거운 사랑도 좋겠지만 목적 없이 피고 지는 사랑은 어떤가. 한 그루 오렌지 나무, 한 그릇의 스프처럼 문뜩 문뜩 스쳐가는 이웃, 혹은 사물과의 짧고 짜릿하게 흔들리는 사랑은 어떻겠는가.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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