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타모니카 블러버드의 작은 극장을 가득 채우는 극단 LA의 뮤지컬,‘너를 위한 I Do’를 관람하며 가장 마음에 닿은 것은 20대 한인 남녀 배우들의 맑은 눈빛이었다.
영화, TV, 인터넷 등 화면을 통해 세상을 바라봐왔던 나에게 오랜만의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숨소리가 들릴 듯 가까운 거리에서 그토록 맑고 깨끗한 사람들을 세세히 들여다보고 느끼는 일이 연극이라는 사실에 즐거워하며, 이 젊은이들이 왜, 무엇을 말하려고 하고 있는가라는 자명한 질문을 하며 앉아있었다.
1년에 걸쳐 박 갈렙과 함께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크리스 예진의 첫번째 작품인데, 그녀는 이민 생활의 힘겨움과 문화 차이의 갈등을 다루기보다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사랑 얘기와 노래로 첫 작품을 선사하는데, 스토리의 탄탄한 구성, 깔끔하고 간결한 연출이 참신하여 말하는 듯이 노래하는 배우들의 진심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들이었지만, 가사가 잘 들리고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듯 친숙히 느껴졌는데,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들에게 있는 삶의 지혜가 연극 전체에 흐른다.
6명의 배역으로 이루어진 ‘너를 위한 I Do’는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낯익은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끝내 무대 위에 나타나지 않는 스펙타클한 스펙을 가진 신랑과 역시 무대 위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부의 우상인 아이돌 가수를 둘러싼 6명의 배역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시대가 막연히 추구하는 의식 속의 권력의 허상을 들추어내는데, 실상 우리들의 삶과 무관한데도 끊임없이 우리들이 스스로 추구하며 억압받고 그 속에 갇혀 괴로움을 당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이 시대 의식 속의 권력의 우상을 밝혀낸다.
이 연극에서 배역이 없이 상징적으로 의도된 허상의 권력 앞에서 순수하고 연약한 존재인 신부의 연인은 늘 미안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되뇌고,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신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순수하고 연약하기에 그는 의외로 무대 위에서 무척 아름다운 존재감으로 빛난다.
무대 경험이 적은 초심의 연기자들이 주는 특별한 감동은 매 순간이 소중하여 단 한 순간도 적당히 거침없이 능숙하게 연기하지 않는 데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식상한 연기의 순간이 없었다는 것이 크리스 예진의 연출이 빼어난 점이다.
살아있는 존재의 아름다움이 순수하게 그대로 드러나는, 연기 경험이 적은 조연들의 연극적이지 않은 연기가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새파란 면도날이 파르르 떨며 서 있듯 배우들의 떨리는 숨소리와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는데, 어떤 거대한 이념이나 역사관도 이러한 감동 앞에서는 구호에 지나지 않을 듯, 그들은 순결히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노래한다.
1980년 대의 한인 타운엔 3가와 옥스포드 근처에 연극인 유혜숙이 마련한 ‘Space 311’이라는 연극 전용극장이 있었고, 화가 김봉태씨가 운영하던 대여 화랑도 상업 화랑도 아닌 멋진 화랑 공간이 있었다.
극단 LA의 창착극을 보고나서 길을 걸으며, 젊은 연극인과 화가들에게 선뜻 멋진 공간을 마련해주었던 선배들이 새삼 고맙고 그리웠다. 쉽지 않았을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며 LA 한인 타운의 연극을 이어가는 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이루어낸 따뜻한 기적에 박수를 보낸다. 뮤지컬은 할리웃 콤플렉스 극장(6476 Santa Monica Blvd)에서 14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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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숙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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