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남성들은 이민생활에서 은퇴하면 집에서 어떻게 지낼까. 미국남성들은 은퇴하면 목수일 배우기, 정원 가꾸기, 보트타기, 스키, 요리강습, 가사 돕기, 자동차수리 강습, 그림 그리기 등 취미가 다양하다. 한인남성들은 뻔하다. 집에서 TV를 보거나 신문 읽는데 주로 시간을 보내고 기껏해야 골프나 낚시, 등산밖에 없다. LA의 골프장이나 주변의 산들이 전세 낸 것처럼 코리언들로 붐비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취미가 무취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다보니 자연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여성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남편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너그럽고 통 큰 줄만 알았던 남편이 잔소리가 많고 쩨쩨한 남자로 이미지가 바뀌어 간다. 남편은 집에서 아무 역할도 못하는 무능한 존재임에도 가부장적인 위엄만 지키려하고 아내를 회사의 부하직원 다루듯 한다.
문제는 여성도 남편의 은퇴 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남자 쪽에서 현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 남편이 직장 다닐 때는 서로 만나는 시간이 짧고 여성도 자유시간이 많아 그럭저럭 참아 왔는데 은퇴 후에는 남편과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그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경제능력도 없어 별 볼일 없는 남자가 여자가 마켓에 갈라치면 올 때 뭐뭐 사오라고 명령조로 지시한다. 아내를 대등한 관계로 봐주지 않고 상하관계로 취급하려 든다. 이 때문에 우울증, 두통 등을 앓게 되는데 남편의 은퇴 후 앓게 되는 이와 같은 여성 병을 일본에서는 ‘부원병(夫源病)’이라고 부른다. 100세 시대가 가져온 새로운 병이다.
남편들에게는 이것이 전혀 다른 각도로 다가온다. 아내가 전보다 건방져지고 분수를 모르는 여자로 변한 것이다. 자신은 가족을 벌어 먹이느라 평생 고생을 했는데 감사하기는커녕 은퇴 후 경제능력이 없어지니까 남편을 우습게 아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무시당할 때 느끼는 분노는 남자가 여성보다 심하다. 콤플렉스에 가까울 정도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 못하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황혼 이혼’이라는 파경을 맞게 된다.
‘황혼 이혼’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세간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한국의 ‘이시형 할머니 사건’(1998년) 이다. 70세의 이시형 할머니는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고 외치며 90세의 은퇴남편을 상대로 재산분할이 포함된 이혼소송을 냈는데 법원이 “서로 화해하고 해로하시라”면서 남편 쪽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내용을 보면 이시형 할머니의 40년 결혼생활은 창살 없는 감옥을 방불케 했고 남편의 부 축적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음에도 남편은 할머니를 아들 집으로 쫓아내려 했으며 36억의 전 재산을 인연도 없는 K대에 기증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유가 기가 막히다. 자신이 죽은 후 아내가 잘사는 꼴을 못 보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판결이 나오자 한국의 모든 여성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이시형 할머니는 결국 남편 재산의 3분의1을 받고 이혼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한인사회에서도 정년을 계기로 여성들의 쌓였던 불만과 남성들의 새로운 불만이 충돌해 노년가정의 숙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남자들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미국인들의 노년생활을 본받지는 못할망정 한국의 TV연속극만 봐도 여권신장이 얼마나 변했는지 느낄 수 있다. 지금의 한인여성들은 옛날의 그 여성이 아니다. 은퇴한 남성들은 파격적으로 변해야 한다. 변하는 비결?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당신을 사랑해”소리는 좀 어색하고 그저 “내 잘못이야” “미안해” “감사해” 이 세 마디만 열심히 되풀이 하면 ‘제2의 인생’으로 불리는 은퇴 후의 부부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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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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