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잭슨 폴락의 ‘넘버 32’ 복원과정 봤더니…
▶ 애벌칠 안된 캔버스에 페인팅

미술품 보존전문가 오토 후바첵이 자신이 개발한 테크닉으로 잭슨 폴락의 ‘넘버 32’를 청소하고 있다. <사진 nytimes.com>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넘버 32’는 거대한 벽화 사이즈의 드립 페인팅(물감을 캔버스에 떨어뜨리는 기법) 작품이다. 검은 색 산업용 페인트가 애벌칠이 돼있지 않은 캔버스에 냉혹하게 묵시적인 구성을 이룬 이 1950년 작품은 추상표현주의의 가장 급진적인 예술품으로 꼽힌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쿤스트잠룽 노르드라인 베스트팔렌 미술관(Kunstsammlung Nordrhein Westfalen)의 소장품인 이 작품은 50년 넘는 세월 동안 계속 전시돼오다 보니 때와 먼지 등 더께가 쌓였고 캔버스는 병든 것처럼 누런색으로 노화의 징후를 나타냈다.
이 캔버스를 깨끗이 닦아내기 위해 이 뮤지엄의 수석 보존전문가 오토 후바첵은 자신만의 특수한 기법을 개발해냈다. 약해져있는 천이 솔벤트 용액에 손상될까봐 걱정도 되고, 기존의 보존 도구들인 브러시와 스폰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에어건 비슷한 기구를 사용해 밀 녹말과 셀룰로즈 섬유소를 표면에 뿌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 입자들이 섬유에 붙은 때를 분리시키면 배큠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다.
후바첵은 높이가 9피트, 넓이가 15피트에 이르는 이 거대한 페인팅을 모두 청소하는 데는 300시간의 세심한 작업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분 부분 손이 많이 가는 아주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8월 이 일에 매달리기 시작해 12월말 청소작업을 마쳤고, 이제 그림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지난 몇 년간 굉장히 피곤해 보였는데 지금은 훨씬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움직임도 더 많이 느껴지고요. 이게 바로 작품의 의도였을 겁니다”라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후바첵(64)은 말했다.
잭슨 폴락만이 비정통적인 재료와 기법을 사용한 모던 아티스트였던 것은 아니다. 폴락의 작품을 여러점 보존처리했고 후바첵에게 자문도 해준 뉴욕 모마(Museum of Modern Art) 현대미술관의 보존전문가 마이클 더피는 헬렌 프랑켄탈러, 모리스 루이스, 짐 다인 등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도 새로운 방법의 보존처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수분이나 습기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델리킷한 보존처리에는 후바첵이 개발해낸 방법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과거에 보존전문가들은 페인팅을 완전히 물로 닦아냄으로써 캔버스가 훨씬 밝게 보이는 방법을 사용하곤 했으나 요즘은 그런 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더피는 설명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락이 ‘넘버 32’를 작업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작가 한스 나무스의 사진. ‘아트뉴스’ 1951년 5월호에 실렸다.
폴락은 ‘넘버 32’를 제작할 때 그의 다른 액션 페인팅들과 마찬가지로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그 위로 페인트를 붓고, 흩뿌리고, 떨어뜨리고, 내던지듯 쏟아서 만들었다.
폴락이 액션 페인팅을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1950년 한스 나무스(Hans Namuth)가 찍은 것인데 ‘아트뉴스’ 1951년 5월호에 실린 이 사진은 그가 자기 스튜디오에서 바로 이 ‘넘버 32’를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스트 햄튼에 있는 헛간을 개조한 스튜디오에서 폴락은 1945년부터 1956년 교통사고로 숨질 때까지 아내 리 크래스너와 함께 일했다.
폴락은 보통 화가들이 쓰는 재료보다는 하드웨어 스토어에서 합성수지 페인트를 사다가 드라이 브러시나 막대기 혹은 배스팅 시린지(고기에 육즙 끼얹는) 같은 비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페인트가 여러겹 덧칠해진 폴락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넘버 32’는 수백군데의 미세한 부분들에서 애벌칠도 하지 않은 캔버스가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특별히 더 오염되기 쉬웠다. 이런 모든 사정으로 인해 뒤셀도르프 뮤지엄의 대표 전시물인 ‘넘버 32’는 보존처리가 큰 과제였고, 후바첵은 작품을 클린하자는 결정에 굉장히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이 작품은 쿤스트잠룽 노르드라인 베스트팔렌 뮤지엄의 초대 관장 베르너 슈말렌바흐가 1964년 카셀에서 열린 도쿠멘타 전시에서 갤러리를 통해 폴락의 아내로부터 구입했다. 후바첵에 따르면 이 작품은 그동안 한번도 유리를 씌워 전시된 적이 없고, 세계 다른 곳으로도 수차례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그만큼 더 더께가 쌓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 뮤지엄으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후바첵은 말했다. 그는 베를린의 내셔널 갤러리의 보존전문가로서 조셉 보이스나 사이 톰블리를 비롯한 많은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복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청소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이건 우리의 폴락인데, 이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작품인데, 당신이 정말 해낼 수 있겠어요?”라는 것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후바첵은 뉴욕으로 날아가서 모마 현대미술관 보존국의 마이클 더피에게 자문을 구했다. 모마는 그때 마침 18개월에 걸친 잭슨 폴락 컨저베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3개의 드립 페인팅을 복원한 참이었다. 모마 프로젝트는 브러시와 배큠, 스폰지와 마른 지우개 등을 사용했다.
입자 블라스팅제를 사용하는 기법은 후바첵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는 이 기법을 종이 보존을 위한 테크닉에서 읽은 후 먼저 작품의 옆면에 실험을 해보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기법은 밀녹말과 셀룰로즈 파우더, 공기압력, 거리, 각도만 일관성있고 정확하게만 사용한다면 기존의 복원기법보다 고도의 정밀성과 섬세함으로 작품을 청소할 수 있게 된다.
“굉장히 흥미롭고 혁신적인 기법으로 들린다”고 말한 더피는 후바첵을 만나서 그 방법에 대해 좀더 알아본 후 모마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지 고려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캔버스를 복원한 후 후바첵은 색이 칠해진 부분을 젖은 슾포로 살살 닦아내고 오리지널 나무 프레임에서 나오는 산(acids)이 캔버스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뒤쪽 라인을 따라 포일 재료로 작업했다. 그는 이 테크닉을 케네스 놀란의 작품에도 사용했고 프랑스 화가 다니엘 뷔렌의 캔버스 작품 시리즈에도 사용할 계획이다.
후바첵은 나무스가 찍은 사진을 보고 ‘넘버 32’에 묻어있는 커피 흘린 자국과 발자국이 원래 폴락이 작업할 당시에 묻힌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자국들도 보존처리에 포함시켰다.
“작품의 일부니까요”라고 말한 후바첵은 이 작업을 하면서 폴락이 일할 때 그랬던 것처럼 재즈를 틀어놓고 들었다고 말했다.
“동작에 도움이 되더군요. 이런 종류의 일을 할 때는 리듬이 있어야 한답니다”
<뉴욕타임스 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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