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는 이야기/ 류제봉 퀸즈한인회 회장 겸 코암 머천트서비스 CEO
디자인 공부 더 하고파 미 유학길...코니아일랜드서 맥주장사로 대박
퀸즈한인회장으로 5년째,적자재정 흑자로 돌려 보람
고객에도 신뢰 최우선, 99%가 단골
그가 제일 중요시 여기는 것은 ‘인간관계’. 언제나 스스럼없는 관계를 맺는다. 그 기준은 ‘신용’. 지키지 못할 약속을 아예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계획이다. 서로의 믿음 속에서 인간관계 자체를 즐기는 것이 그의 삶이다. “젠, 확실한 친구야! 믿을 수 있는 친구야!”라는 얘기를 듣는 이유다. 그는 류제봉(59) 퀸즈한인회 회장이자 코암 머천트 서비스 최고경영자(CEO)이다.
■‘진등포, 먼등포’ 토박이
그는 1957년 태어났다. 4남1녀의 둘째. 아버지는 미 8군 우유회사에 다녔다. 고향은 서울 영등포. 미국 올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았다. 영등포 초등학교를 다녔고 강서중학교 2회 졸업생이다. 당시 영등포 길은 비포장. 비가 오면 질퍽거려 ‘진등포’, 해가 뜨면 먼지가 풀풀 날려 ‘먼등포’로 불렸다. 성격은 밝고 명랑했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은 더 좋아했다. 개구쟁이 그 자체였다.
그래도 할 땐 했다. 시험을 치러 명문 ‘서울성남고등학교’에 합격했다. 대학 전공은 공예과. 디자인 공부를 했다. 서울산업대학교 전신인 ‘경기공업전문학교’에서. 디자인 솜씨는 뛰어난 편. 상공부 주최 한국디자인 전람회에서 입선했다.
전국대학생디자인 전람회에선 특선을 차지했다. 군 복무는 7사단 8연대에서 했다. 수송부 서무계. 제대 후에는 설계사무소를 다녔다. 하지만 더 많은 공부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그래서 1983년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당시 어학연수 비자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다행히 국전 입선과 대학생디자인 특선 수상경력 덕분에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그는 1983년 덴버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6개월 정도. 그 후 캔자스대학에 들어갔다. 디자인을 공부했다. 하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주말에 플리마켓에 나갔다. 시계, 유모차, 세발자전거 등을 팔았다. 한국 학점을 인정받아 3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후 뉴욕으로 향했다. 1987년 뉴욕입성, 스태튼아일랜드에 둥지를 틀었다.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장사를 택했다. 밴에 선글라스를 싣고 잡화상에 납품했다.
그러다 식품업에 뛰어들었다. 코니아일랜드 바닷가 앞에 빈 점포를 얻었다. 경험이 전혀 없어 야채가게 다니던 친구와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한 시즌 지나자 손을 들어야 할 판이었다. 너무나 장사가 안 됐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빚은 갚자고 마음먹었다. 지역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시장조사를 했다. 결론은 ‘맥주’ 아이템 추가. 즉시 맥주라이선스를 신청했다. 직접 나무를 사다가 선반 등 가게도 꾸몄다. 날이 더워지면서 1시간 만에 맥주 20박스가 다 팔렸다. 하루에 맥주판매가 50박스로 늘었다. 덩달아 물, 어름도 동이 났다. ‘대박’이 터진 것이다. 가게를 팔 때까지 7년 동안 매주 7일 꼬박 장사를 했다. 집도 사고 리커스토어와 런드로맷 등도 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한 5년 정도 돈 걱정(?) 없이 살았다.
그러다 주식투자에 손을 댔다. 6개월 만에 10년 공든 탑이 무너졌다. 점심 먹을 돈이 없을 정도로 쫄딱 망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를 새 삶의 밑거름으로 사용했다. 중국을 오가며 와인오프너를 수입해 와이너리에 납품했다. 2004년엔 플러싱으로 진출, 전화 사업을 했다. 그렇게 재기에 정열을 쏟았다. 2014년부터는 공인딜러인 코암 머천트 서비스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현재까지 열심히 살고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못 이긴다.
그는 열정적으로 산다. 최선을 다한다.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사업도 그렇고 퀸즈한인회 회장 역할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든 열심히 사는 것이 그의 본 모습인 셈이다.
그의 코암 머천트 서비스 운영도 그렇다. 계약에서 설치, 카드사고 예방 및 재산보호를 위해 철저한 고객관리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고객맞춤형 고객감동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 이는 그가 고객들의 일을 자기의 일처럼 해주며 끝까지 도와주는 ‘고객만족서비스’ 철학 때문이다. 고객에게 신뢰도 절대 잃지 않는다. 약속을 생명처럼 여긴다. 고객유치에 과대포장도 하지 않는다. 과대 포장한 겉치레보다는 본질과 핵심에 충실하다. 급하게 먹는 밥은 항상 체하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최고서비스가 최고의 마케팅이자 경쟁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가족처럼 여기는 직원들에게 근면, 성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교육한다. 전문화된 직원들은 억측을 부리는 고객이라도 신뢰를 잃지 않는 범위라면 고객 위주로 일을 해준다.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라는 마음으로 최고의 서비스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코암 머천트 서비스의 고객 99%가 단골인 이유다.
그는 “크레딧 카드 결제는 추측하지 말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야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아직도 조언을 무시하고 고집부리다 손해 보는 업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럴 것이다’와 ‘이런 것이다’는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고 귀띔한다.
그는 5년째 맡고 있는 퀸즈한인회 회장 역할도 열정적으로 한다. 2011년 ‘수석부회장’을 맡으면서 ‘부족한 경험을 열심히 발로 뛰면서 극복하자’고 결심했다. 갑작스런 회장유고로 회장대행을 맡았다. 정식회장 인준도 받았다. 포기할 수 없는 상황, 더욱 열심히 했다. 그렇게 퀸즈한인회 제24대와 25대 회장을 맡아 5년째 한인회에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회장 취임 일성으로 ‘한인회 기반을 확고히 다지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생명처럼 여겼기에 한인회 재정을 적자에서 흑자로 돌렸다. 올 1사분기 현재 약 2만 달러 잔고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을 회장으로서 가장 자랑스럽고 보람 있는 일로 꼽는 다. 한인사회 정치력신장 약속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지역정치인을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돈독한 관계를 쌓고 협조체제도 어느 정도 구축했다. 이젠 한인회 행사에 정치인들이 제 발로 찾아올 정도다.
그의 발로 뛰는 열정이 한인들의 위상을 그 만큼 높인 셈이다. 더불어 한인상인들의 경제 활성화에도 적극 나섰다. 머레이힐 먹자골목에서 블록축제를 3번씩이나 한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렇지만, 한인들의 참여부족이 드러난 뉴욕의 첫 ‘한국광장’인 플러싱 156가 ‘코리아타운 플라자’만 생각하면 늘 마음이 착잡하다.
그는 ‘한인들의 도움이 한인회를 잘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상황에서 한인들의 협조가 안 될 때는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웠다. 앞으로는 한인들이 좀 더 똘똘 뭉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행복은 남의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인생 역시 자기 일을 충실히 하면서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 열심히 사는 사람은 못 이긴다”는 삶의 신조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정받는 삶. 누구나 꿈꾸지만 쉽지 않다. 수많은 ‘대충대충형’ 한인단체장들 가운데 열심히 사는 그가 유독 돋보이는 이유다
■동포자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는 국산품 애용자다. 가전제품, 자동차 등 가능한 한국산을 산다. 미국에 와서 한국기업의 ‘홍보전사’를 자임한 한인들 중 한 명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런 그가 한국기업들의 한인사회 무관심에 목소리를 높인다. 미주시장 진출 초기 동포사회의 무조건적인 애정 속에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고는 지금에 와서는 한인사회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프랜차이즈업체들이 한인동포와 상생하지 않고 한인사회를 거저먹는 시장으로 생각하는 태도에도 강력 대응했다. 한국 국적기들이 미주노선 가격담합 혐의를 받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당요금 환불 신청 범 동포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국적기들이 가격 담합에 따른 책임을 지고 동포들의 피해 보상에 적극 임해야할 것이라고 강력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퀸즈한인회를 비영리단체로 등록을 마쳤다. 한인과 한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회관건립기금 모금운동도 전개했다. 한인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동포회관 건립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뜻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장기적 안목에서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그는 한인들의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한인동포들의 자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뉴욕한인봉사센터(KCS)의 새 회관 기금모금에 2,000달러를 전달했다. 보다 많은 한인들이 기금모금에 참여할 것도 홍보하고 있다. 특히 한국기업들도 이제는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도 한인 기업들은 한인사회의 위한 일에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동안 한인사회에 무관심을 보였던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새롭게 이미지를 쇄신하길 기대한다”며 한국 기업들의 적극동참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한인회장은 돈이나 지식보다는 투철한 봉사정신이 있어야 한다”며 “이제 1년도 남지 않은 임기지만 진정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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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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