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정상회담, DJ 귀국 등 막후 장면 생생
▶ “반기문 총장이 당시 정보 수집” 내용도
1980년대 당시 한미 간 외교 비화 등을 알 수 있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총 1,602권, 25만여쪽 분량으로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전두환 대통령 미국 방문’,‘김대중 귀국’ 등 1985년을 전후해 생산된 문서들이 중심이며 당시 전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한미정상회담 막후에 벌어진 일들과 미국에 망명했던 김대중 귀국을 둘러싼 전후 사정 등 한국 외교사의 주요 장면들을 드러내고 있다.
■1985년 한미정상회담 막후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1985년 4월24∼29일 전 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 후 언론 발표 과정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호헌에 대한 공개 지지 표명을 해줄 것을 미국 측에 집요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 측은 “한국 내에서 헌법 개정 문제가 정치 문제화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이 이 문제를 언급하면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맞섰다.
아울러 미국이 5·18 민주화 항쟁을 유혈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사실도 이번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드러났다.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1980년 8월29일 당시 박동진 외무부 장관과 면담에서 “미국 행정부는 이번(에) 전(두환) 장군께서 대통령에 취임하시게 됨은 한국의 국내 정세 흐름으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며, 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므로…”라고 말했다.
■김일성 발언도 공개
북한 김일성은 1980년대 초반 “소련(러시아)은 믿을 수 없고(cannot rely on), 중공(중국)은 믿지 않는다(doesn’t rely on)”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1980년대 외교문서에 따르면 당시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는 리처드 홀브룩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과 만나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이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의 몬조 공사는 1980년 3월4일 박쌍용 외무부 정무차관보와의 면담에서 “최근 홀브룩 차관보와 시아누크간 면담 내용”이라면서 이같이 전했다.
■반기문 총장도 등장
1980년대 중반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을 현지 공관이 우리 정부에 보고하는 외교문서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정보 수집 관련자로 등장했다.
1985년 1월 7일 유병현 주미 한국대사는 이원경 외무장관에게 미국 학계·법조계 인사 130여 명으로 구성된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운동’이 김 전 대통령의 안전 귀국을 요청하는 연명 서한을 전두환 당시 대통령 앞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전문 보고했다.
이런 내용은 당시 하버드 대학 행정대학원에 연수 중이던 반기문 참사관이 하버드대 교수로부터 입수해 주미 한국대사관에 알렸다고 유 장관은 전문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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