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여명 남녀 생도들, 열악한 환경에서 태권도 연마
▶ 2001년부터 16년째 이어져
미국 육군 초급 장교를 양성하는 웨스트포인트(West Point)에 16년째 태권도 기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던 웨스트포인트는 뉴욕 주 남부에 있는 도시이자 미국 육군사관학교의 또 다른 이름.
22일 저녁 웨스트포인트 내 아이젠하워 홀 4층 로비는 하얀 태권도복을 입은 육사생도 50여 명의 발차기와 지르기, 그리고 이들이 쉴 새 없이 내지르는 기합소리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금발 머리의 여자 백인 생도와 흑인 남자 생도, 그리고 아시안과 히스패닉 등이 얽힌 태권도클럽 생도들은 그레고리 뷰 코치의 지도 아래 구슬땀을 흘렸다.
몸 풀기가 끝나자 줄을 맞춰 앞차기, 돌려차기, 후려 차기 등 태권도 기본 동작을 펼쳤으며, 일대일 대련과 마무리 체조로 1시간여의 훈련이 끝났다.
일대일 대련은 한솥밥을 먹는 동료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인정사정없이 진행됐다.
한국어 구령인 "준비"에 이어 "시작" 소리가 나자마자 두 생도의 발동작이 빨라졌다. 2라운드를 모두 소화하지 못하고 발목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생도도 나왔다.
태권도클럽의 주장인 엘리스 발데스는 "세 살 때 태권도를 시작했다"면서 "태권도는 체력관리를 위해 정말 좋은 운동"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이어 "태권도는 근육만 단련해서 잘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라 민첩함과 점프력, 유연성을 모두 필요로 한다. 육체적으로 폭넓게 단련할 수 있는 동시에 나의 한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평가했다.
미국 육군의 지도자를 양성하려고 1802년 설립된 웨스트포인트에 태권도클럽이 생긴 것은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태권도연맹 산하 팬암(PAN-AM) 연맹의 최지호 회장이 웨스트포인트에서 특강한 것을 계기로 생도 12명이 배움을 자청했고, 이들은 불과 1년 만에 출전한 2002년 미국대학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5위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출범 당시 12명이었던 태권도 훈련 생도는 현재 52명으로 늘었다.
대략 남녀 각 절반이며,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고르게 퍼져 있다. 태권도 수준도 이제 막 시작한 초보부터 대회에서 입상을 노리는 고수까지 다양하다.
한국계로 작년에 입학한 김원화(여) 생도는 "한국계가 아닌 생도들과 한국 문화를 같이하는 게 정말 좋다. 한국계가 아닌데도 나만큼 태권도를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친언니, 친오빠와 같이 있는 것처럼 좋다"며 훈련 내내 즐거워했다.
태권도는 육사의 정식 과목이 아니다.
한때 정식과목으로 추진했지만 내부 반발로 무산된 이후 선수단(Competitive Team)으로 운영돼 오다가 2012년에는 취미클럽(Hobby Club)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학교로부터 받는 예산도 열악하며 학교 측이 훈련장소를 배정해 주지도 않는다. 또 정규수업과 방과 후 활동까지 모두 끝낸 뒤에야 훈련할 수 있다.
룸이 아닌 복도에 매트를 깔고 훈련하는 열악한 조건이지만, 50여 명의 생도는 개의치 않고 일주일에 세 번씩 모여 기량을 갈고닦는다.
코치를 맡은 그레고리 뷰는 2004년 육사 졸업생으로 생도 시절 태권도를 배웠다.
그는 "육사 생도들이 태권도를 좋아하는 것은 올림픽 종목이기 때문"이라면서 "또한 실전 무술인 태권도는 (군대 지도자가 될) 생도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육사에서 자리를 잘 잡아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육사 태권도 생도들은 이번 주말 프린스턴대에서 열리는 미국 동부지역 대학 태권도 콘퍼런스에 참가한다.
이 대회에는 28개 대학에서 400여 명이 출전해 태권도 기량을 겨룬다.
한국 뉴욕문화원은 미국 동부지역에서 태권도가 활성화돼 새로운 한류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육사 태권도클럽에 태권도복을 지원하고, 육사를 포함해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기관에서 태권도가 인기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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