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자들 위한 산자들의 땅싸움
▶ 인구밀도 악명 높은데 고령인구 급증 정부 제공 유골 안치소 6년 기다려야

홍콩의 한 아파트 건물의 앞에 있는 구릉이 온통 묘지로 뒤덮여 있다.

공중 납골당의 벽면이 손바닥 만한 유골 봉안실로 꽉차 있다.
취윤싱의 모친은 지난 4월 타계했다. 화장을 거쳐 한 줌의 재로 변한 그녀의 유골은 조그만 상자에 넣어진 채 영면장소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취윤싱은 추모관의 비둘기 집처럼 조그만한 납골당 자리를 얻기 위해 최고 18개월을 기다릴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18개월 후에도 자리를 얻지 못하면 아버지의 유골을 모신 중국 본토로 어머니의 뼈를 가져갈 생각이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취윤싱은 중국의 전통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은퇴 대학교수인 그는“최후의 방법은 공원에 재를 뿌리는 것”이라며 “만약 그 방법을 택하게 된다면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720만명의 인구가 밀집한 중국 남단의 도시 홍콩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치열한 땅 다툼이 전개되어 왔다.
홍콩에서 가장 값나가는 것은 땅이다. 극도로 제한된 토지에 산 자를 수용하기 위한 개발 프로젝트를 풀가동하다 보니 부동산 가격은 늘 북진한다.
죽은 자도 땅을 필요로 하긴 마찬가지다. 중국의 전통적인 장의법이 매장을 원칙으로 한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이웃하며 공존하는 홍콩은 후손들이 조상의 유택을 청소하는 전통명절인 청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도시 전체가 운무 같은 짙은 향연의 막에 갇혀 버린다. 중국인들은 향을 사르고 종이돈을 태우는 것으로 선조에 대한 경의를 표시한다.
홍콩의 고령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땅 싸움이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시사한다. .
관련 당국의 전망에 따르면 2014년 전체 인구의 15%였던 홍콩의 고령자 수는 2024년에는 25%선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연간 사망자 수도 2010년의 4만2,700명에서 2019년에는 5만3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1960년대 총독부 관리들은 매장지 부족을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화장을 적극 장려했다. 현재 홍콩의 화장률은 90%선까지 치솟았다.
유분을 저장하기 위해 정부는 수 만개의 유골항아리를 안치할 납골당이라는 거대한 대형 구조물을 세우고 종이돈(지전)과 다른 봉헌물을 태울 용광로를 설치했다. 그러나 공급은 좀처럼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장의업협회의 회장인 람 와이-룽은 “의심할 나위 없이 납골당 부지가 태부족한 상황이지만 시의원회의 봉안시설 추가건설 요구는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청문회를 개최할 때마다 각 지역의 주민들은 ‘우리 동네엔 절대 안 된다’며 맹렬히 반대했다”고 밝혔다.
반대이유는 너무도 분명했다. 청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극심한 교통체증과 지전이나 향을 사르는데서 오는 대기오염이 두렵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집값이 떨어진다는 두려움이다.
유족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납골당에 손바닥 만한 유골항아리 안치장소를 얻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최고 6년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일부 유족들은 불법 시설물로 여겨지는 120여개의 사설 납골당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설 납골당은 너무 비싸 서민들이 접근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한 사찰이 운영하는 사설 납골당에 유골단지를 안치하려면 최소 미화 9,500달러에서 11만5,000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2007년 이래 홍콩 정부 당국은 망자의 분골을 바다, 혹은 11개의 지정 추모정원에 뿌리는 방안을 적극 장려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산자락이나 바다 근처의 명당자리에 묘를 쓰는 것이 가족의 재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중국인의 믿음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는 교육용 비디오와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 등을 통해 전통적 장의에 대한 태도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유족이 망자의 사진과 비디오를 띄우고 자두와 구운 돼지고기 등 전자 봉헌물을 올릴 수 있는 전자 추모 사이트도 설립했다. 물론 이용자는 수는 거의 없다. 그래도 바다와 추모정원 이용건수는 2005년의 수십 건에서 지난해 3,553건으로 증가했다.
일부 기업들은 보다 창조적인 해법을 제공 중이다.
세이지 퓨너럴 서비시즈는 3년 전부터 한국의 연구소와 제휴, 초고온의 열을 가해 유골을 추모 보석으로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세이지의 세일즈 디렉터인 벳시 마는 “첫 해에는 아버지의 유골로 귀고리와 목걸이를 만들어 차고 다니는 나를 모두가 미쳤다며 손가락질했다”고 털어놓았다.
상당수의 중국인들은 유해를 보석으로 만들거나 집에 보관하면 망자의 귀신을 불러들이게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업 출범 2년째인 지난해부터 이 방법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정부 감찰관들은 납골당 프로젝트가 연이어 연기되고 사설 업체들에 대한 규정강화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3년간 유골 안치소 부족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부 사업가들은 현대식 초대형 납골시설을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공간보다 망자의 유택을 제공하는 것이 이문이 크다는 계산에서다.
최근 케리 라지스틱스라는 회사는 15층짜리 부두 창고를 현대식 납골시설로 전환하는 안을 제안했다. 미화 2억6,000만달러가 소요되는 이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스마트카드로 열고 닫는 8만2,000개의 유골단지 보관함이 추가된다. 유족들은 비디오 스크린을 통해 망자의 사진과 고인의 생전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볼 수 있고 최첨단 공기정화 시설을 설치해 향과 지전을 사르는 연기도 차단하게 된다.
그러나 케리 라지스틱스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 공식 개발계획 승인을 따내지 못한 상태다.
인구밀도가 높기로 악명 높은 홍콩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땅 싸움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