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4시, 온세상이 잠들어 적막한데, 밤새 이 골목 저 골목 돌다 잠 못 이룬 바람만이 창문에 부대낀다. 맑은 정신으로 새벽에 글을 쓸 요량으로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더니 머리가 맑은 샘물 같다. 쇼팽의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들으며 커피를 뽑는다. 아, 이 행복한 순간!
내가 좋아하는 이지러지고 투박한 질그릇으로 된 커피잔에 뜨거운 커피를 팔부쯤만 채운다. 가득 채우면 오히려 커피맛이 떨어지는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문득 조선시대의 거상이었던 가포 임상옥이 스승 석숭 스님으로부터 하사받았다던 ‘계영배’(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잔)가 떠오른다. 오히려 가득 채울려고 하면 빈잔이 되어 버린다는 잔, 내마음에 많은 것을 깊이 깨우치게 한다.
우리는 항상 너무도 목말라 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득 채울려고 온힘을 기울인다. 우리가 노력하고 바란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의 마음은 쉬지않고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 채워지지 않음이 다행인 것은, 그 부족한 만큼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남을 이해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말 배고파 보지 않고 어떻게 배고픔을 알 수 있고 진정 외로워 보지 않고 외로운 사람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부족함은 우리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우리를 잡아주는 스승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모든것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넘치는 정보, 넘치는 물자들, 하지만 상대적으로 너무도 많기 때문에 자신이 갖지 못하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감, 갖고자 하는 심한 갈증도 느낀다. 너무 많이 먹어 생기는 각종 병들, 너무도 쉽게 버려대어 넘치는 쓰레기 더미들, 이렇게 많이 쓰고 많이 버리다 보면 언젠가는 고갈될 자원들.
내 어린시절, 비오는 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뒤집혀 우산살이 부러지던 비닐우산,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쓰고도 깍지를 껴 길게 만들어서 마지막까지 썼던 몽당연필,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버릴 것도 많지 않았던 그때, 상황을 조금만 낫게 만드는 물건들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졌었는지! TV나 게임기 대신 책을 벗삼고 자연과 친구들과 어울려 뒹굴며 전혀 부족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었다. 이제 넘치는 것들을 좀 비울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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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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