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5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가택 연금된 후 야당 인사 석방, 민주 회복, 정치 복원 등 ‘민주화 5개 항’을 요구하며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 후 신군부의 허가를 받아 방문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기념촬영한 박의정씨 부부.
"좀 더 사셨으면 좋았을텐데 마음이 많이 아프고 아쉽습니다"
지난 1999년 6월 대통령 퇴임 후 일본 방문에 나서던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김포공항에서 페인트 계란 세례를 주었던 북가주 거주 한인동포 박의정씨가 YS의 서거소식을 접한 뒤 고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명복을 빌었다.
박의정씨는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YS는 물론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같은 정당에 몸을 담고 있었는데 항상 YS편을 들었다"면서 "그 이유는 YS가 좀 더 솔직했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위에서 함께 고생하는 사람들을 더 잘 챙겨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자신이 반 박정희 투쟁을 하다가 감옥에 갔을때에도 항상 사식을 넣어주는 등 많은 신경을 써 준것에 대해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고인을 기렸다.
박 씨는 본인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페인트 계란세례를 날린 것은 IMF를 일으켜 국민들을 고생시킨 것과 미전향수 이인모씨 북송과정에서 자신이 북한을 방문, 당시 북측관계자들과 협의했던 이산가족 상봉을 지키지 못한것과 철없는 아들에게 맡겨 정치를 망가뜨린 것 때문이라면서 그때 참았어야 하는데 후회가 된다고 밝혔다.
박 씨는 YS와 DJ에 대한 논평을 통해 "YS가 지식면에서는 DJ보다 못했지만 순간순간의 정치적 감각은 정말 뛰어났다"면서 "DJ는 정치활동하면서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YS는 노력대신 타고난 정치 감각으로 대통령까지 지내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를 역임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시절 국회의원 제명이 되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일성을 가한 어록과 관련,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촌철살인"이라면서 "YS는 그분의 호(거산)처럼 대한민국을 민주주의의 반석에 올려놓은 거대한 산"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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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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