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23대 한국은행 총재는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정부와는 껄끄러웠지만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킨 끝에 2008년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한번은 사석에서 그에게 물었다. “ 성적이 신통치 않은 학생에게 어떤 진로를 권할 것인가?” 그는 “역시 공부다. 예체능보다 공부로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답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중앙은행의 수장다운 대답이다. 물론성적이 신통치 않은 학생에게는 꼰대의 잔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이런 수도승 같았던 이 총재가 폭주한 적이 있다. 한 경영인 대상 강연에서 “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라. ‘ 야성적 충동’(AnimalSpirit)이 중요하다”고 주문한 것이다. 경제 성장은 더딘데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놓기만 할 뿐 투자를 미루자 일침을 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한인 경제권에 야성적 충동은 살아있나? 경제학자 존 케인즈는사업을 시작하고, 직원을 고용하고,설비에 투자하고, 돈을 소비하도록하는 심리를 야성에 비유했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도 저서에서 “경제를 움직이는데 야성적 충동은 꼭 필요하다”고 썼다.
야성적 충동은 길들일 수 없는 탓에 IT나 부동산 분야의 버블을 양산했고 탐욕과 결합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반대로는 천적을 만난짐승이 복종하듯 자신감이 극도로 쇠퇴하며 대공황을 낳기도 했다.
한인사회의 경제상황은 녹록치 않다. 한인은행들의 최근 실적은 성장일변도에서 벗어나 정체조짐을 보였다. 자바시장 경기는 극도로 위축됐고 일부는 떠날 채비들로 분주하다. 변화를 거부한 한인업소들은 과거로 회귀한 모습이다.
때마침 오는 25일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의 야성적 충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농사꾼 핏줄을 거부하고 부친이 소를 판 돈을 훔쳐 사업을 벌였다. 500원 동전의 거북선을 보여주고 영국에서 차관을 끌어온 일화는 유명하다. 그에게 조선업은 철판 잘라 용접하고 엔진 올리면 되는 건설현장일과 매한가지였고 도크는 배가 들어가는 큰 수영장일 뿐이었다.
정주영의 시선으로 본다면 어떨까. 한인은행들은 미국 내 아시안 마켓이나 주류시장을 노릴 정도의 실력과 규모를 갖춘 근사한 군대로 보일 것이다. 자바시장의 위기는 진입장벽이 낮은 산업이 태생적으로 갖는 한계로더 이상 변수가 못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한인업소들에게 그는 “이봐,해봤어?”라고 꾸짖었을 터다.
한인 경제권에 야성적 충동이 독일지, 약일지의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길을 못 찾으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내며 큰 족적을 남긴 한 기업인의 의지는 새롭게떠올려 봄직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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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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