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숙 ‘어느 여름 날
시월의 빛 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탑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 짓
첫눈 속에 파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그 많은 약속들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한때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삶을 불태우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릴 때까지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여기 거기 그리고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더 멀리에
말해봐
이 모든 것들 위로
넌 아직도 내 생각을 하고 있는가.
/ 류시화(1958- )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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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깊어간다. 하나 둘 잎들이 지고, 나무며 빌딩의 그림자가 자라난다. 또 한 바탕의 여름은 갔다. 불타오르던 사랑도 갔고 천년의 맹세도 시들어버렸다. 더러는 붉은 열매가 되어 나무 위에 빛나고 더러는 쓸쓸한 바람결에 떨어져 자취도 없는, 이 계절은 필시 익명의 계절이다. 사랑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바람 속에서 화자는 묻는다, 희미한 기억처럼 시간은 스스로의 상실 속에 깊어 가는데...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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