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판에 ‘트럼프 바람’이 한창이다. 억만장자 트럼프는 거침이 없다. 인종차별, 성차별, 백인 우월주의 등으로 들릴법한 막말을 거침없이 한다. 그럼에도 공화당 대선 주자들 중 지지율이 1등이다. 트럼프 현상으로 공화당이 좋아할지 난감해할지 속내가 궁금하다.
지난 16일 LA 북쪽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2차 TV 토론회’ 현장에 가보았다. 취재 현장을 찾기 전 생각으로는 트럼프가 캘리포니아에서는 꽤나 욕을 먹을 것 같았다. 캘리포니아는 대표적인 리버럴, 피부색과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가치를 중시하는 주 아니던가.
레이건 도서관 입구 삼거리에는 주민 200여명이 일찌감치 진을 치고 트럼프를 비판하는 팻말과 피냐타를 들고 대선후보의 ‘지성과 품격’을 물었다. 시위대는 히스패닉과 백인들이 주를 이뤘다.
트럼프가 레이건 도서관으로 들어갈 때 이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Shame on You)!”고 외쳤다. 한 살배기 딸을 데려온 백인 의사 제이크 도넬슨(36)은 “정치 시스템이 붕괴돼 트럼프 같은 사람이 공화당 후보 1위다. 폭스방송 등 미디어의 비판 기능이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트럼프 지지 열기였다. 레이건 도서관 입구에 모인 사람들 중 약 40%는 트럼프를 극진히 환대했다. 진보의 가치를 내건 캘리포니아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들은 열렬했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트럼프는 미국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트럼프를 치켜세우자’ ‘진보 미디어를 믿지 말라’는 팻말들을 들고 있었다.
노스 할리웃에서 왔다는 30대 백인 남성은 “트럼프는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성공한 사업가”라며 “이민정책은 트럼프 말이 맞다. 미국은 우수하고 검증된 사람들만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고 되물었다. 시미밸리 주민인 60대 백인 여성 두 명은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는 우리 생각을 100% 대변해 오바마케어 등 잘못된 정책도 바로잡을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지지율 1등 공신들이 남가주 곳곳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자를 향한 불편한 속내를 숨겨온 이들의 민낯을 바라보는 심정은 조금 섬뜩했다. 트럼프 지지율은 헛웃음 주는 기행에 대한 반대급부일 거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히틀러 등장 초기 특정 사상과 인종을 재물삼아 비판적 사고의 싹을 자른 모습과 비슷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분노를 배출할 희생양을 찾는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 이런 정서를 몰아내고 지성과 이성이 미국 대선을 지배하길 바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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