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완성도가 좀 떨어져도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가 있다. 올해 처음으로 한국 관객수 500만 명을 돌파한 ‘연평해전’이 그런 영화다. 실화의 힘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보수성향이 강한 중년층 관객이 아니라 20대 관객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또래 젊은이의 희생정신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등 흥행요인 분석을 접하면서 영화 ‘연평해전’이 7년의 제작기간 끝에 세상의 빛을 보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제작 당시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티가 확연했고 연평해전 전사자 실명을 그대로 가져온 영화 속 인물들은 다큐멘터리 이상의 극적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실화의 무게감 덕택에 2시간은 훌쩍 지나갔고 영화가 끝난 후 7,000여명의 후원자 명단을 내보내느라 길고도 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면서 짧게 등장한 실제 인물 소개와 생전 인터뷰에 울컥해버렸다. 2002년 연평해전 당시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을 받은 참수리 357호 정장이 29세(1973년생)로 가장 많은 나이였다. 나머지 전사 장병들은 20대 초반이었다. 연평해전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을 외치며 월드컵 응원에 누구보다 목청을 높일 그들이었다.
2007년을 전후해 자료를 수집하고 이듬해 나온 소설 ‘연평해전’을 읽고난 후 영화제작을 결심했다는 김학순 감독의 제작 의도는 이렇다. “한쪽에선 웃고 떠들고, 다른 한쪽에선 울면서 전투를 벌이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아마도 통일이 될 때까지 이런 아이러니가 계속 되지 않을까 싶다.”서해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을 넘어 한국 영해를 침범한 북한 경비정을 한국 해군의 고속정이 선체를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1999년 제1연평해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온통 월드컵에 열광했던 2002년, 이 영화의 배경인 된 제2연평해전이 발생해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다. 이후에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연평도 포격 등 서해 북방한계선에서의 끊이지 않는 교전은 한반도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는 이유는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은 기억하면서 연평해전은 잊어버린 한국 사회의 자기반성이 작용한 모양이다. 언젠가 한국 축구팀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 2002년 그날의 함성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겠지만 ‘연평해전’은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또 일어날지 모르는 현실 아닌가. 좀 실망스럽고 작품성에 토를 달고 싶더라도 영화 ‘연평해전’에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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