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화났다. 화가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니다. 분노라고 표현하는 쪽이 적절할 정도다. 160석의 다수의석을 가지고도 야당에 이리저리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새누리당 모습에 분통이 터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 사망자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박근혜의 또 다른 얼굴’이다.
박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국회를 배신집단, 심판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일하는 대통령의 발목만 잡는 국회에 대한 선거혁명까지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회를 이처럼 심하게 비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앞으로는 여야에 매달리기 보다는 국민과 직접 상대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결의가 담겨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생관련 61개 법안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어 박대통령은 자신의 2년8개월 남은 임기동안 경제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회의에 빠지면서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터진 것이다. 야당은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 박근혜 무능한 대통령 만들기’‘박근혜 식물인간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여당의 원내세력이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는커녕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박근혜 리더십’이 위기를 맞고 있다. 새누리당을 비박계가 장악하면서 다수가 되어 곳곳에서 대통령과 당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당대표와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박계인 김무성, 유승민이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에 앞서 국회의장 선거에서도 비박계(정의화 후보)가 승리했다. 그런데 비박계는 새누리당이 무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음 총선에서 패배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원내대표로 당선된 유승민의 좌클릭에 여러 의원이 동조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유승민 의원은 개헌을 부르짖는 이재오 의원과 묵계설까지 나돌아 청와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구에서는 타자가 홈런을 치고 싶어도 감독이 지시하면 희생번트를 해야 하는 법이다. 타자가 왜 나에게 번트를 요구하느냐면서 감독에게 대들면 그 야구팀은 갈 데까지 간 팀이다. 정치도 같은 원리다. 팀웍이 깨지면 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그와 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없는 새누리당은 웅담 없는 곰이나 마찬가지다. 친박이 이를 무기로 비박을 벼랑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새누리당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박근혜를 따라야하는 것이 새누리당의 어쩔 수 없는 타고 난 운명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의식개혁을 외쳐왔다. 그의 국가개조론은 곧 의식개혁이다. 의식개혁은 대통령부터 시범을 보여야 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정죄하는 것은 상황을 바로 잡지 못한다. 정치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유승민이 밉더라도 떡을 한 개 더 주는 게임을 벌였더라면 그를 단계적으로 사퇴 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대통령과 여당의 원내대표가 맞붙어 싸우는 모양새를 택했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이 질수가 없다. 유승민이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물러난 유승민이 뭐가 되겠는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매장되는 것이다. 게다가 김무성 대표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박 대통령의 오기정치가 친박 비박의 싸움에 휘발유를 붓게 되고 야당분열에 진절머리를 낸 국민들은 여당에 대해서도 실망해 정치에 등을 돌리게 된다.
사태가 이지경이 된 데에는 박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기싸움에서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지는 척 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정치력이고 리더십이다. 메르스 위기도 겹쳐 국민의 불만은 지금 폭발직전이다. 민심을 잘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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