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메모리얼 데이인 25일 미국 버지니아 주 알링턴의 알링턴국립묘지에서 열린 전몰자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AP)
’전몰자 추도 기념일’로 미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 데이(매해 5월 마지막 월요일)를 가장 먼저 만든 이들은 해방된 흑인 노예라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코네티컷 컬리지의 역사학과 교수인 짐 다운스는 메모리얼 데이인 25일 미국 역사 뉴스 전문 채널인 HNN에 올린 기고에서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메모리얼 데이를 창시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인인 그는 남북전쟁과 이후 재건 기간 흑인이 겪은 질병과 고통을 담은 책 ‘자유로부터의 고통’의 저자다.
보통 메모리얼 데이는 남북전쟁(1861∼1865년) 3년 후인 1868년 5월 30일, 존 로건 장군이 남부연합군에 대항해 미국 연방을 지킨 북군 전몰자의 무덤에 꽃을 장식하라고 내린 포고령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식한다는 뜻에서 ‘데커레이션 데이’로도 불린다.
그러나 다운스 교수는 남북전쟁 직후로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65년 5월 1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서 자유로운 신분을 획득한 흑인들이 모여 남북전쟁에서 노예해방을 위해 싸운 연방군(북군) 전사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전쟁 종식을 기념한 것을 메모리얼 데이의 기원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연방군이 승리를 앞둔 1865년 4월 남북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찰스턴에 입성했고, 도시를 등진 백인을 대신해 터전을 지키던 흑인들이 연방군을 환영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견해는 설득력을 얻는다.
다운스 교수는 이날 흑인들이 단순히 노예 해방을 자축한 것뿐만 아니라 전쟁 중 자유로운 신분을 획득하고도 콜레라, 이질, 황열 등 각종 전염병 탓에 자유를 온전히 누리기도 전에 목숨을 빼앗긴 가족과 친지들을 애도했다고 소개했다.
실제 남북전쟁 전사자 중 전투 중 사망한 이들보다 전염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 이들이 더 많았을 정도로 당시 전염병은 큰 재앙이었다.
전쟁 기간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흑인들은 그러나 의·식·주 등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여건을 갖추지 못한 나머지 전염병에 그대로 노출됐다.
1863년 창궐한 천연두로 흑인 6만 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전염병 등으로 해방된 노예 400만 명의 25%인 100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
다운스 교수는 많은 이들이 남북전쟁 전장에서 죽은 백인 병사의 사진을 기록으로 관리하고 그들의 죽음을 추모하면서도 질병으로 사망한 흑인들의 사진은 볼 수도 없고 그러한 역사적 사실마저 잊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메모리얼 데이의 기원에 흑인의 애환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메모리얼 데이는 1800년대 말까지 연방군과 남부연합군 전사자를 따로 추모하는 지역별 행사로 치러지다가 외세와의 대결이 본격화한 1900년대 초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1971년부터 국가 공휴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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