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 회장>
사흘이 멀다 하고 오는 눈 폭풍에 우리 마을은 하늘 아래 작은 섬이 되었다. 섬이 된 마을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다.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며 창의 덧문을 내렸다. 봄이라 여기기에는 마른 겨울나무 가지 사이를 훑고 지나가는 칼바람이 매섭고, 겨울이라 하기에는 눈 덮인 목련에 서둘러 맺힌 봉우리가 안쓰럽기만 하다. 지난 폭설의 잔해가 아직도 화석처럼 남아 있음에도 마음으로는 땅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지는 2월…. 회색의 달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봤다. 한국에서 개봉 당시 평론가 및 여야 정치인들의 엇갈린 감상평에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급기야 정치 논쟁으로까지 번져 한때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지만 관객 천만을 넘어 섰다니 어떤 영화일지 참 궁금했다. 주말의 늦은 오후, 영화관을 메운 관객의 대부분은 가끔씩 눈에 띄는 젊은이 몇을 제외하고는 눈짐작으로도 내 연배쯤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영화는 2시간 내내 1950년부터 현재까지 역동의 세월을 겪어 내며 가족들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산 주인공 ‘덕수’를 통해 말을 걸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부모로부터 들었을법한 이야기를 주인공 ‘덕수’를 통해 보며, 문득 우리들 이민 1세대가 겪는 희생과 아픔이 오버랩 되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산가족 상봉 생방송을 하던 시절, 잃어버린 가족도 없는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TV를 봤던 것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들에게 가 닿을 수 있었던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요즘이야 언제라도 비행기만 타면 하루 안에 고국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시절이지만 주인공 ‘덕수’가 피난길에 잃어버린 동생 ‘막순’은 우리 자신이었고 그리운 가족이었다.
‘덕수’가 고국의 불행한 현대사를 통과하며 겪는 그 아픔에 비교될 바는 아니지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가족을 위해 일하는 이 낯선 땅이 우리의 ‘국제 시장’인 것이다. 자신의 꿈을 버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덕수’가 고집스럽게 국제시장에 남아 있는 것을 자식들이 이해하지 못했듯이, 이민 1세대들의 희생과 아픔을 과연 우리 자녀 세대들은 이해 할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도록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말없이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 이만하면 잘 살았지 예?’ 모두가 ‘덕수’ 가 되어 각자의 아버지에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땅의 또 다른 ‘국제시장’ 에서 힘들게 살아 온 자신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회한이었는지도, 그도 아니면 회색인으로 살아 온 것이 자신만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 속에 작은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내는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기 참 다행이라고… ‘ 주인공 ‘덕수’의 이 독백은 이민 1세대로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극장을 나서니 하늘이 온통 잿빛이었다. 낯설고도 익숙한 땅에 바람이 불었다. 영화 속 ‘덕수’ 의 삶은 그 아버지 세대의 아픈 이야기였으나, 지금도 계속되는 이민자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과 마주하더라도 주어진 자리에서 감사하게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 우리들의 아버지, 그리고 지금 이 낯선 땅의 또 다른 ‘국제시장’ 에 이민자로 서 있는 ‘덕수’ 에게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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