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김종필? 정치인으로는 그저 그런 정치인이다. 보수 정객인데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말년에 진보진영을 왔다 갔다 하다가 스타일을 구겼다. 육사8기 출신의 예비역 장군이지만 전투에서 공을 세운 군인이 아니라 쿠데타를 일으켜 하루아침에 중령에서 대령을 거쳐 준장이 된 비모범적 군인이다. 국회의원도 오래했고 국무총리까지 지냈지만 신통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인생말년에 엉뚱한 과정에서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부인이 드러눕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 했으며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가 부인에게 보여준 아내 사랑은 남성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반신불수가 된 그가 병상에 누워있는 부인을 위로하는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다. JP는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팔과 다리를 못 쓰고 있는데 그런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6개월 동안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 하면서 부인을 간병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부인 박영옥 여사(86)의 빈소를 찾아온 조문객들과 나눈 그의 대화는 하나의 금언집이다.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데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사(死)뿐이야. 나도 마누라 따라 곧 가야지 너무 외로워.” “아내 사랑이 곧 내 사랑이지.” “마누라가 소중하다는 것은 생전에도 가끔 느꼈지만 막상 없으니까...(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알겠다는 말을 미처 못 하면서 흐느꼈다)” “아내와 같은 자리에 눕고 싶어서 나는 국립묘지에 안가기로 했어” 등등 남성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는 금쪽같은 말들을 쏟아 냈다.
부부는 결혼식에서 평생해로를 맹세하지만 같은 날 죽을 수는 없는 문제다.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있다. 그런데 남자가 먼저 죽으면 몰라도 여자가 먼저 가면 남자가 아주 처량해 보인다. JP가 그것을 보여 주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한 사람이지만 부인 육영수 여사를 잃은 후의 그의 모습은 너무나 허약해 김재규가 박정희에 대해 굉장히 실망했었다고 한다. 사랑은 이별하기 전까지는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무뚝뚝한 한국남성은 대부분 부인이 세상을 떠날 때에야 자신이 얼마나 부인을 사랑 했는가를 깨닫게 된다.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사별이 노인들에게 던져주는 하나의 숙제가 있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 모두 중병을 오래 앓고 있을 때 그 고달픈 간병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지난달 일본의 홋카이도에서 치매에 걸린 부인을 5년 동안 간병해온 71세의 남성이 생활고까지 겹치자 부인을 살해한 후 자살미수한 사건이 사회문제로 부각된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5년 동안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간병을 견디지 못해 배우자를 살인한 사건이 600여건이나 된다. 일본에서는 병상에 있는 노인의 50%가 노노 간병이라고 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새로운 고민꺼리다.
오늘의 일본 노인사회의 그림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내일의 우리 모습이다. 오래 아프면 엄청난 경제적 출혈이 생겨 재력이 없는 노인부부에게는 굉장한 부담이다. 몸이 불편한 JP는 자신을 부인이 입원해 있는 병원까지 데려다 줄 운전기사가 있기에 망정이지 보통사람의 경우 아픈 몸을 이끌고 매일 부인을 찾아 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구나 아내가 5년 이상 중병으로 앓고 있으면 JP와 같은 사부곡(思婦曲)이 가능할까. 수명연장이 곧 축복은 아니다. 건강수명이 축복이며 늙어서 앓아 드러누우면 빨리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 노인들의 육복(六福)이다. 오늘 거행된 JP 부인의 장례식을 보며 내 안에 잉태되어 있는 노인의 미래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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