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300점 포함 조각·판화 등 1만점 상속... 대량판매 계획에 값 떨어질까 미술계 우려
▶ 냉대 받은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 한때 조부작품 뒤집어 걸며 분노 표시
마리나 피카소의 빌라 거실에 걸려있는 피카소의 1935년도 작품 ‘가족’.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손녀 마리나 피카소. 그는 작품들을 팔아 자선사업에 쓰겠다고 밝혔다.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손녀가 상속받은 조부의 작품 중 상당수를 처분할 계획이 알려지면서 미술계가 긴장하고 있다. 미술시장에 대량으로 나와 값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나 피카소(64)는 “작품을 팔아 인도적 목적에 재분배하는 것이 낫다”면서 아이들과 노인들을 위한 자선사업 확장 기금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마리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불우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비를 얻기 위해 할아버지의 프랑스풍 빌라 앞을 서성거리던 아픈 기억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많은 연인을 가졌었지만 결혼은 두번 만 했던 피카소는 4명의 자녀와 8명의 손주를 남겼는데 마리나는 파카소가 첫 번째 부인인 러시아 발레리나 올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파울로의 딸이다. 아버지 파울로는 할아버지의 운전기사 등 허드렛일을 하며 늘 생활비를 구걸했고 아버지와 이혼한 뒤 마리나와 오빠 파블리토의 양육을 맡았던 어머니는 알콜중독에 빠졌다.
“내게 할아버지란 없었다”고 말하는 마리나가 할아버지 가족들과 특히 멀어진 것은 1973년 피카소 사망 후 그의 두 번째 부인 재클린 로크가 파블리토를 장례식에 참석 못하게 막으면서였다. 며칠 후 파블리토가 표백제를 마시고 자살해버린 것이다. 가난했던 그들은 파블리토의 장례식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치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명성이 주는 압박감과 그 할아버지의 무관심과 냉대에 대한 분노, 오빠의 자살로 인한 고통과 좌절 등으로 몸부림치며 15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마리나는 호스피스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다.
1973년 91세로 타계하기 까지 5만여 작품을 남긴 피카소는 그러나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당연히 미망인과 자녀들, 손자녀들 사이에서의 유산을 둘러싼 암투가 시작됐다. 그 결과 자신이 상속자의 한명으로 지명되어 유산의 5분의 1을 상속받은 것은 당시 20대였던 마리나에겐 전혀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었다.
그녀가 받은 상속의 규모는 엄청났다. 19세기 스타일의 빌라와 함께 1만점의 피카소 작품이 그녀의 몫이었다. 300점의 페인팅을 비롯해 세라믹과 드로잉, 판화와 조각 등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상속받은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도 감사하고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없는 유산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누를 수 없었던 마리나는 한동안 작품들을 벽을 향해 뒤집어 걸어두기도 했다.
2001년 회고록 ‘피카소 : 나의 할아버지’를 발간하며 고통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던 마리나는 지금 자신이 해오고 있는 자선사업을 키우는 기금을 충당하기 위해 조부의 작품들을 팔아 치울 준비를 하는 것도 반항의 표시라고 인정했다. 그녀는 베트남의 아동병원과 프랑스와 스위스의 노임 및 불우 청소년 돕기 프로젝트 등을 지원하고 있다.
마리나의 피카소 작품 ‘처분’ 계획에 미술계의 반응은 호의적이 아니다. 경매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는 비전통적 방식을 택할 생각인데다, 파카소의 작품이 대량으로 시장에 나올 경우 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샘 휴스턴 텍사스 주립대학의 미술사 교수 엔리케 말렌은 아트 전문사이트 ‘온라인 피카소 프로젝트’에서 피카소 상속자 중 “작품 판매에 속도를 내는 것은 마리나 피카소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작품을 팔 것인지, 얼마나 팔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맨 처음 매물로 내놓을 작품은 정했다. 피카소의 1935년도 작품 ‘가족(La Famille)’,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서있는 한 가족의 모습이다.
“상징적이지요. 난 훌륭한 패밀리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가족은 가족이 아니었으니까요”라고 마리나는 말했다.
마리나의 5명 자녀 중 3명은 베트남에서 입양한 아이들이다. 지난해에만 170만 달러를 프랑스의 의료재단에 기부한 마리나는 요양병원 노인환자와 틴에이저 정신병동을 위한 기부도 계속하고 있다. 피카소의 작품들을 팔아 앞으로도 기부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는 마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난 현재에 삽니다. 과거는 과거로 묻었지요.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을 겁니다, 결코. 할아버지와 예술가로서의 그의 위상은 존경합니다. 그러나 난 그의 손녀이고 상속자이긴 하지만 한 번도 그의 마음속에서 손녀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