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장소서 이성과 접촉하다 걸리면 형사처벌
▶ 부모가 정해주는 남자와 사전교제도 없이 결혼... “낡은 관습에 저항” 독신여성 수 급격한 증가세
사우디아라비아 지다의 한 커피샵에서 한 여성이 셀폰으로 텍스트 메시징을 하는 친구 옆에서 물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우디 여성들은 아직도 가정과 사화에서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하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성과 어울릴 수 없다.
■ 21세기 버젓이 벌어지는 ‘사우디의 여성억압 전통’
암나 파타니(27)에겐 꿈이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유별난 그녀는 행정분야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기 원한다. 중앙 정부의 다른 기관은 ‘남성천하’라 이력서를 내밀기조차 어렵지만 최근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노동부라면 어찌어찌 뚫고 들어갈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창창한 삶의 여정에서 꼭 피해 가고 싶은 길도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니 세대가 그 이전 세대로부터 대물림한 삶을 또다시 복제하고 싶진 않다.
어머니는 문중의 뜻을 좇아 스무 살도 채 안된 어린 나이에 출가해 가정을 꾸렸다. 첫 날밤을 치르기 전까지 남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사회생활의 기회를 봉쇄당했으며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파타니는 결코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노라 끊임없이 다짐하지만, 자신의 결심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내심 불안한 게 사실이다.
평등과 개방이 사회의 키워드로 자리 잡은 요즘과 같은 시대에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파타니가 미국에 유학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자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대부분의 궁금증이 한꺼번에 해소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회교국들 가운데서도 가장 보수적인 국가로 꼽힌다. 엄격한 가부장적 율법의 지배를 받는 원조 이슬람국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들은 독자적인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성년이 된 후에도 여행을 가거나 유학을 하려면 남성 후견인의 허락부터 얻어야 한다. 의과대학에서 특정 전문과정을 이수하고 싶어도 후견인이 반대하면 그걸로 끝이다.
대부분 아버지, 혹은 남편이 이 역할을 담당하지만 친족 가운데 ‘윗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오빠나 남동생이 결정권을 행사한다. 어머니에게는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중동 지역의 ‘남존여비’ 사상은 뿌리가 깊다.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다섯 조각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여자와 아이를 제외한 장정 5,000명을 배불리 먹였다는 이른바 ‘오병이어’의 기적이 등장한다. 그때에도 여성은 머릿수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던 셈이다.
그로부터 2,000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흘렀지만 중동 지역, 특히 이슬람교의 메카가 자리 잡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지위는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운전을 해서도 안 되고 외출 때에는 반드시 얼굴을 가리는 검은 베일을 쓰고 시커먼 차도르를 입어야 한다.
자유로운 이성교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공공장소에서 이성과의 접촉은 금기사항에 속한다. 대학은 물론 극장과 식당, 심지어 마켓과 샤핑몰에서도 남녀는 서로 격리된다.
이성과 함께 있다가 ‘도덕 경찰’에 적발되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해당 여성의 가족까지 공개적으로 ‘개망신’을 당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차 안에 남자친구와 함께 ‘얌전히’ 앉아 있던 미혼 여성이 체포되어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철저한 ‘남녀부동석’의 원칙이 적용되는 곳이 열사의 사막 사우디아라비아다.
이슬람권에서는 부모의 뜻을 거슬러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했거나, 혼외관계 등 음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가족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 이런 야만적인 관습을 현지인들은 ‘명예살인’이라 부른다. 1977년 사우디의 한 공주도 연인과 ‘사랑의 도피’를 하려다 붙잡혀 명예살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생활에 길들여진 파타니는 자신의 의견이 배제된 중매결혼을 받아들이지 않을 작정이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결혼제도를 뒤집어 엎을 만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파타니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은 싱글로 남는 것뿐이다. 적어도 이 점에 있어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30세를 넘긴 사우디 여성들 가운데 미혼녀의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는 파타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여성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 통념상 사우디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20대 초반이다. 그런데 경제기획원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1년 150만명을 헤아리던 30세 이상 독신 여성의 수는 2011년 33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사우디 전체 인구는 2,000만명이다.
성별을 기준한 사회 각 분야의 인적 구조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대학 재학생의 남녀비율은 ‘남소여대’로 바뀌었고 국가의 재정보조를 받는 유학생 15만명 가운데 상당수가 여학생으로 채워졌다. 고학력 여성의 증가세에 발맞춰 2009년 이전까지 5만5,000명을 밑돌던 근로여성 인구 역시 40만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괄목할 만한 수치상의 개선이 여성권의 신장으로 직결되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이성 간의 ‘온라인 접촉’이 빈번해 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결혼문제에 관한 한 여성에게 제한적인 배우자 선택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현지의 사회학자들은 노처녀 증가의 또 다른 원인으로 신랑이 신부 측에 지불해야 하는 ‘마흐르’의 부담을 꼽는다. 마흐르는 신부로 데려올 여성의 가족에게 신랑 후보가 제공하는 ‘역 지참금’ 형태의 돈이다.
여성의 몸값이 계속 올라가면서 마흐르를 마련하지 못하는 총각들이 늘고 있고, 자연스레 노처녀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타니는 자신이 결코 독신주의자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만 양보할 수 없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결혼을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그녀는 배우자의 조건으로 해외 유학경험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미국처럼 열린사회에서 생활한 남성이라면 아무래도 ‘개화’된 여성관을 갖고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둘째는 최소한의 교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처녀로 늙어죽을지언정 전적으로 어머니의 중매에 의존하는 결혼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대다수 회교국에서는 양가 어머니가 ‘중매쟁이’ 역할을 담당한다.
먼저 양가의 어머니가 서로 조건을 맞추어보고 합의를 보면 신랑 후보가 해당 여성의 아버지를 찾아가 딸을 주십사 허락을 구한다. 청혼을 장인이 될 사람에게 하는 셈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신랑신부 후보의 상견례가 이루어진다.
파타니는 자기 또래 미국 여성들의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최근 CNN 방송의 시리즈를 통해 접한 실리콘밸리 젊은이들의 성풍속도는 난교와 마약이 판치는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기에 족했다.
그러나 귀국을 앞둔 파타니가 원하는 것은 도를 넘은 방만한 자유연애가 아니다. 다만 결혼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함께 ‘장보기’를 하는 정도의 교제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인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아직 ‘씨도 안 먹힐’ 잠꼬대 같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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