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서 납치·고문 북한 감옥서 숨져
▶ DC 항소법원, 유족 손배소 승소판결
고 김동식 목사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북한의 첫 금메달(유도)을 따낸 계순희(당시 16세) 선수와 기념촬영을 하던 모습. <연합>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다가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된 뒤 지난 2001년 북한 감옥에서 고문 후유증 끝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미주 한인 고 김동식 목사(당시 54세) 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미국 법원에서 내려져 주목되고 있다.
워싱턴 DC 연방 순회항소법원의 데이빗 테이틀 판사는 김 목사의 유가족들이 지난 2009년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23일 “김 목사가 고문을 당하고 사망에 이른데 대해 북한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책임을 입증하기 어려워 기각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김 목사의 동생과 아들 등 유가족은 김 목사가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중국에서 북한으로 끌려간 뒤 수용소에서 불법 감금과 고문을 당해 굶어 죽었다며 지난 2009년 피해 보상금 2,500만달러와 징벌금 3억달러 등 총 3억2,500만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북한을 상대로 제기했으나 워싱턴 DC 연방 법원은 증거불충분으로 소송을 기각했다.
테이틀 판사는 이날 판결문에서 “북한이 김 목사를 납치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북한이 지속적으로 김 목사와 같은 죄수들을 고문하고 사망하게 만든 점, 북한이 테러와 위협으로 증인들이 법정진술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김 목사를 고문하고 사망했다는 논리적 귀결에 이른다”고 판시했다.
테이틀 판사는 이어 “김 목사는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와 망명자들을 위해 인도주의적인 활동과 종교 봉사를 하는데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며 “북한이 김 목사를 겨냥한 것은 그의 인도주의적 활동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에 대한 선교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김씨 가족이 제출한 증거로 볼 때 북한 공작원들이 2000년 김 목사를 납치했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만일 북한이 김 목사를 고문하거나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면 재판에 반드시 참석하거나 반박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1947년생으로 부산의 고려신학교를 졸업한 김 목사는 미국 이민 후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며 장애인 돕기 등에 헌신하다가 탈북자와 북한 난민가족들을 돕기 위해 1993년 중국으로 이주한 뒤 지린성 옌지에서 북한 어린이들과 장애인들의 학교인 ‘사랑의 집’을 운영했다.
중국에서 탈북자 돕기 활동을 계속하던 김 목사는 지난 2000년 1월16일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들어갔으며, 북한 당국은 김 목사를 위협세력으로 판단해 강제 개종과 탈북자 한국 이송 회개를 요구하며 모진 고문을 했고, 결국 김 목사는 2001년 1월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사망한 뒤 유해가 평양 인근 상원리 조선인민군 91 훈련소 위수구역 내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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