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측근이 원수, 부자는 형제가 원수’라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다. 박정희대통령이 왜 비참한 최후를 마쳤는가. 가장 측근인 차지철과 김재규의 마찰 때문이었다.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가 급한 보고를 드릴 것이 있다며 청와대에 들어갔는데도 경호실장인 차지철이 대통령면담을 막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차지철 쪽에서 보면 김재규가 별것 아닌 것 가지고 대통령을 자주 만나려는 것으로 생각해 차단한 것이고 김재규 쪽에서 보면 급한 보고라며 청와대로 달려갔는데 경호실장에 밀려 허탕치고 돌아왔으니 정보부 참모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창피한 일이다. 결국 두 사람의 권력다툼에 박정희대통령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측근이 실세에서 밀려난 후 허탈감에 못 이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김형욱(전 중앙정부장) 케이스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 청와대를 뒤흔들고 있는 ‘실세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개입’ 논란에 대해 박근혜대통령은 찌라시 사건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대통령의 시국을 보는 시각이 문제다. 이건 찌라시 사건이 아니다.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다툼이 드러났으며 국민들이 박태통령의 통치스타일에 무척 실망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비선실세와 문고리 3인방의 인사개입 운운이 증권가의 찌라시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박근혜대통령을 모시고 있던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들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대통령은 자신을 직접 보좌했던 사람들이 왜 현 정권의 인사난맥을 폭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알아야 한다. 전직 장관이 인사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가졌던 대화내용을 까발린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죽 한이 맺혔으면 배반자 소리를 들어가며 문제를 제기 했을까.
이들의 불만은 측근들의 인사개입이다. 박근혜정권의 병폐가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났다. 김용준총리, 윤창중대변인 임명을 비롯해 현 정권의 이해가 안 되는 깜짝 인사는 한두번이 아니었다. 박근혜대통령이 누구의 말을 듣고 이런 인사를 하는가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대략 윤곽이 밝혀진 셈이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실세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실세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다 실패한 것이 문고리 3인방과 공직기강 비서관실의 알력다툼이다. 거기에 대통령의 지시로 친인척감시를 심하게 받은 박지만회장이 불만을 토로해 일파만파로 번진 게이트다. 박근혜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겁나거나 두려운 것이 없다”고 말해 여론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했는데 이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통령의 오만이다. 자신이 임명한 장관과 비서들이 말썽을 일으킨 만큼 국민에게 사과부터 했어야 옳은데 아주 다른 길로 빠지는 것 같다.
정윤회 전 비서실장이 검찰에 나와 무엇을 진술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소리가 그 소리일 뿐이다. 지금 대통령이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 비서 간의 대결이 아니라 국민과 대통령의 대결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18년간 함께 일해온 부속실 3인방을 의리를 생각해 계속 옹호하면 대통령이 비선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것이며 다음 선거에서 보수진영의 참패를 불러 올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이 내리막길을 달리지 않으려면 제갈공명의 ‘휘루참마속’ 결단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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