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M 칼국수 식당에 가면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한 특별한 테이블이 있다. 독서실처럼 앞사람이 내 얼굴을 못 보도록 칸막이를 해놓은 테이블이다. 사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일인데 테이블 구도를 이렇게 해놓으면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싱글족 인구증가에 맞추어 식당 전 좌석이 1인용 테이블로 꾸며진 ‘인말’이라는 레스토랑이 ‘명물’로 등장했을 정도다.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불안해 결혼을 늦게 하고 독신주의까지 마다않는 데다 황혼이혼이 늘고, 배우자를 잃은 장수 노인층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효사상이 몸에 밴 가족중심의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을 비정상으로 간주해 왔다. 그런데 이민와서 미국문화를 따라가다 보니 개인주의와 독신주의 물결에 말려들어 혈연중심의 문화가 깨져가고 있다.
이민1세는 부모를 섬겨온 세대다. 그런데 이민1세가 뼈 빠지도록 고생해서 키운 2세들은 부모와 떨어져서 사는 것을 자기 권리로 생각하고 부모 돕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나의 주변에는 자식들이 일류대학을 나온 후 직장을 가졌는데도 부모를 돕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는 시니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자녀들이 “나 살기도 힘겹다”며 부모를 자주 찾아보는 것조차 게을리 하고 있다. 구시대 문화에 젖어있는 이민사회의 시니어들은 가족의 가치와 형태가 변하고 있어 새로운 시각으로 이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연말모임에서 “우리 아이들은 부모에게 이렇게 잘한다”며 자랑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 팔자는 왜 이런가”싶어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도 있다. 동창모임 등에서 자식 자랑하는 것도 옆 사람 눈치 봐가면서 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이민사회 현실이다. 1900년대 초 이탈리아계 이민이 붐을 이루었으나 이민1세의 3분의 1이 역이민을 택해 다시 고향에 돌아간 것도 이탈리아인의 가족중심 사상 때문이다. 미국이 재미없는 천국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늙은 개 돌보는 노령견 입양에는 적극적이면서 늙은 부모들은 돌보지 않는 젊은이들이 미국에는 너무나 많다.
노인층의 고독이 한인 이민사회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노인부부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사망해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점점 늘고 있는 현상이다. 1세들은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에 2세들에게 구차스런 소리하기를 싫어한다. 자녀와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데 건강까지 나빠지면 정말 외로워진다. 나이 먹어 노인이 되면 지연, 학연, 사연 심지어 혈연까지 끊어지게 된다. 부모가 심장마비나 고혈압으로 숨졌는데도 자녀들이 며칠이 지나도록 모르고 이웃도 눈치 채지 못하는 고독사가 한인사회서 발생하고 있다. 2010년 일본의 NHK-TV가 혼자 살다 혼자 죽는 ‘무연사회’라는 특집을 방송해 노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노인 장수시대가 왔지만 일본에서 가족들도 모르게 죽는 무연사 노인들이 연간 3만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12월이다. 11월이 감사의 계절이라면 12월은 사랑을 베푸는 계절이다. 눈 오는 12월이 되면 더욱 외로워지는 사람들이 노인이다. 이들에게 징글벨이 울려 퍼지는 12월은 사랑의 계절이 아니라 고독의 계절이다. 노인들에게 관심을 갖자. 따뜻한 사랑을 베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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