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넘치던 세월은 이미 흘러가 버린 지 까마득한 옛날, 나이 들어 생각은 더욱 깊어지고 입은 있으되 언어 선택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고 오직 묶여 있지 않은 회상만 자유로이 동서남북 시공간을 넘나든다. 삶의 흔적은 눈꼬리에 차곡차곡 더욱 깊이 새겨지고 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내 마음은 어찌 늙을 줄을 모르는지. 그렇다고 지나가 버린 세월을 역행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루 24시간을 25시가 아닌 48시간으로 쪼개어 쓰며 살고 있다. 그런데 나의 시간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명탐정이 범인 찾아내는 기지를 빌려서라도 내 시간을 찾아 나서야겠다. 삶의 지혜라고 할까. 누구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라던가 피로를 회복시켜 주는 방법을 한 두 개쯤 터득,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꼭두새벽 신문읽기를 시작으로 정신의 집중이 필요 없고 육체가 부산해지는 낮 시간에는 손아귀에 들어가는 소책자를, 사방이 고요히 잠들 무렵이면 여유만만하게 책 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그리고 낮 시간 주 3일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여분의 지방을 연소시킨다. 주말 2박3일의 소여행(小旅行)을 하면 그런대로 생활하는 것이 무료하지는 않다.
이사하고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짐이 많은데 박스 하나 창고에서 꺼내 올라왔다. 작은 원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다리가 너무 저려오므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소리 없이 안개가 퍼져 가는데 한밤중의 주차장에는 차들이 질서정연하게 쉬고 있다. 안전을 도모하고 보호하듯 적당한 거리를 두고 높이 솟아있는 가로등, 희미하게 뻗어가는 그 빛은 얕으막한 숲을 끼고 언덕으로 넘어가는 길목까지 밝혀주니 나의 시선 역시 그 곳까지 뻗어간다.
그런데 왜 한밤중에 달팽이 생각이 떠오르는지. 연 산호색 작은 몸체에 손으로 빚은 듯 예쁜 짐을 등에 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달팽이, 길 떠나기 전 목을 길게 빼어 점 같은 양쪽 눈으로, 잠수함이 잠수경으로 망망대해 살핀 후 부상하듯 사방을 살핀 다음 성의껏 가꿔놓은 농작물에 잠간 실례하고, 하얀 길을 남기고 서행해 가는 달팽이. 오수라도 즐기고 갈 것이지 무거운 짐을 지고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세월아 네월아 가거라. 천하태평 무릉도원에서 사는 친구가 오라고 했는가 아니면 자신의 시간을 찾아 가는 것일까.
이 나이에 두뇌 속에 그려놓았던 설계도가 아직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을까. 왜 이렇게 바쁜지 몰라 나는. 내 시간은 어디에서 찾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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