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10번 고속도로는 어깨 위에 세기말을 짊어지고 있었고
길을 안내하는 표시판이 후줄그레 걸려 있었다.
나는 무거운 발을 끌면서
1999년 12월 31일 오후 세 시를 가고 있었다.
스모그와 물에 젖은 세상의 우울한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알지 못하는 미래도
언젠가는 이렇게 잠겨가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이렇게 가는 구나 중얼거리면서
가고 있었다.
그때,
저무는 하늘 위로
아직 남아있는 오늘의 햇살이 빗금으로 스미고
보이지 않는 상처들로부터
물질문명의 딱딱함으로부터
젖어있는 무기력으로부터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으로부터
지나간 천 년으로부터
물방울 하나하나에 새겨둔 약속이 일어서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저 건너편에서
눈부신 하얀 손을 내미시는 이
김 동찬 (1958-) ‘무지개’ 전문
2012년도 쉽지 않은 한 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침체, 기후변동으로 인한 자연재해, 범죄, 부정부패, 그리고 종말에의 불안. 화려한 문명의 저변에서 스모그와 물에 젖은 세상은 소리도 없이 신음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닌 마지막, 그 고비를 참고 견디면 회생의 시간은 온다. 내일이 비록 어제를 되풀이 한다 할지라도 가슴 깊이 희망의 씨앗 하나 지키고 있는 이는 마침내 하늘에 피어나는 무지개를 보게 되는 것이다. 힘든 시간을 지낸 이들만이 알아챌 수 있는 환한 약속의 무지개, 오랫동안 좋은 시를 소개해 주신 김동찬 시인께 그 무지개를 물려받는다.
임혜신<시인>
■알림-새해부터 임혜신 시인이‘이 아침의 시’를 맡습니다. 임 시인은 1995년 미주한국일보로 등단, 시집‘환각의 숲’영시해설‘임혜신이 읽어주는 오늘의 미국 현대시’를 펴냈고, 미주 시인상과 해외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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