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뇌호르몬인 옥시토신(oxytocin)을 정기적으로 주입받았다면‘불륜’으로 인한 불명예 퇴진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옥시토신은“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과 신뢰를 촉진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논문은 옥시토신이‘남성 정조 호르몬’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흥미로운 증거를 제공한다.
옥시토신 냄새 맡은 유부남
조강지처와 유대감 강화돼
멋진 여성 만나도 거리감 둬
미혼 남성엔 영향 전혀 없어
뉴로사이언스 저널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옥시토신 냄새에 노출된 기혼 남성은 신기하게도 방금 만난 매력적인 여성과의 사이에 조심스레 ‘거리’를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성애자인 미혼 남성은 옥시토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코 안에 옥시토신 스프레이 세례를 당한 미혼 남성은 처음 만난 멋진 여성으로부터 불과 21~24인치 떨어진 이른바 개인의 ‘사적 공간’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접근했다.
반면 “아내와 안정적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힌 기혼 남성들은 옥시토신에 노출된 후 매력만점인 외간 여성과의 사이에 평균 27.5~30.5인치의 거리를 두었다. 미혼 남성에 비해 ‘유혹’으로부터 평균 6.5인치의 안전거리를 추가한 셈이다.
옥시토신으로 위장한 가짜 약을 사용한 결과 기혼 남성은 미혼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제 막 만난 뇌쇄적 여성에게 바짝 다가섰다. 이는 옥시토신의 효과가 확실하다는 반증이다.
‘거부하기 힘든 매력’을 지닌 여성의 실물크기 사진 앞에서도 옥시토신 세례를 받는 기혼 남성은 미혼 남성보다 한발자국 정도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반면 새로 만난 대상이 여성이 아닌 남성인 경우 옥시토신은 기혼 남성에게 ‘거리두기’ 반응을 촉발시키지 않았다. 이성애자인 기혼 남성에게 동성은 ‘잠재적 유혹’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는 오르가즘을 느끼거나 수유와 출산을 할 때 대량 분비되는 옥시토신이 이제까지 알려진 것보다 인체 내에서 훨씬 미묘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원 들쥐(prairie voles)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옥시토신은 짝짓기 상대와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효과를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실험에서 옥시토신을 뇌척수액에 주입받은 들쥐들은 일제히 발기반응을 일으켰다.
이를 근거로 연구원들은 이 신경전달 물질의 영향을 받은 남성은 여성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더욱 강하게 끌리는 것으로 추정했다.
뇌에서 옥시토신 분비량이 늘어나면 남녀에 관계없이 상대에게 무차별적인 믿음과 친근한 행동을 보이게 된다는 얘기다.
독일 본 대학의 심리학자 레네 헐레만 박사는 “이처럼 타인에 대한 호감을 유발하는 옥시토신이 기혼 남성의 경우 조강지처와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반면 외간 여자를 멀리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라며 “그러나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장구한 시간에 걸쳐 배우자와 자녀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남성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옥시토신은 기혼 남성의 이탈행동을 억제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차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결국 뇌기능이 진화했다는 뜻이다.
클레어몬트 대학원의 신경경제학연구소의 폴 자크 소장은 새로운 연구결과는 옥시토신이 사람들을 더욱 우호적으로 만들뿐 아니라 감정소통을 강화하고 사회적 신호(social cue)를 보다 충실히 따르게 만든다는 우리의 자체적 결론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자크 소장은 “남성이 이성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옥시토신이 뇌의 반응방식에 차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우리의 뇌가 장기적인 연애관계를 구축하려는 쪽으로 진화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플레이보이 잡지의 창업주인 ‘난봉꾼’ 휴 헤프너는 남성의 역할 모델이 아니라 예외에 해당한다.
흡입형 옥시토신은 1997년까지 신토시논(Syntocinon)이라는 상품명으로 미국에서 판매됐다. 용도는 남편의 궤도이탈 방지가 아니라 신참 엄마들의 수유 지원이었다. 옥시토신이 시장에서 사라진 것은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니라 비즈니스와 관련된 이유에서였다.
최근에는 옥시토신이 자폐증이나 정신분열증을 지닌 사람들의 사교적 기술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여부가 집중적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옥시토신이 여성에게 일으키는 효과는 분명하게 밝혀졌다. 옥시토신의 합성형태인 피토신이 유도분만제로 사용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옥시토신은 출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옥시토신은 또한 엄마의 젖 내림도 촉진한다.
그러나 이 화학물질이 남성에게 주는 효과는 미스터리에 속한다. 예를 들어 높은 수준의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옥시토신의 분비를 억제한다.
옥시토신 흡입을 통해 바람둥이 남성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가능한가를 묻는 질문에 헐레만 박사는 “그렇게 강력한 약품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며 껄껄 웃었다.
높은 수준의 옥시토신, 혹은 이보다 더 강력한 남성의 신경전달 물질인 바소프레신은 성행위나 포옹, 스킨십을 나눌 때, 혹은 배우자나 짝이 곁에 있을 때 분비된다.
헐레만 박사는 코 안에 옥시토신 스프레이 세례를 받은 남성은 친밀한 상대와 이제 막 정사를 나눈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며 “이런 느낌에 빠진 상태에서 곧바로 다른 외간 여성에게 접근하려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만약 배우자나 파트너가 파티에서 새로 만난 여성에게 조금 지나치게 친절하게 군다 싶으면 ‘특별한 조치’를 통해 옥시토신을 대량 살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헐레만 박사는 한눈 팔려드는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우리 둘이 어떤 사이인지를 적극적으로 일깨워주는 것으로 옥시토신 효과를 대신할 수 있다”며 “성행위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헐레만 박사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혹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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