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재선으로 부자증세 밀어붙일 기세
공화당, 부채상한 증액‘카드’로 대응할 듯
민주당, 사회복지비 삭감은 절대 수용 못해
미국 백악관과 의회가 본격적인 `재정 절벽(fiscal cliff)’ 협상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ㆍ민주당과, 예산ㆍ세금 문제의 선(先)의결권을 갖는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오는 12월31일까지 감세 시한 연장과 정부예산 지출 삭감에 합의하지 못하면 내년 1월1일부터 소득세 등 각종 세금이 오르고 국방ㆍ국내 부문 정부 지출이 대폭 줄면서 5천억∼6천억달러 상당의 소비가 위축돼 경기가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지는 재정 절벽이 현실화된다.
미국이 세계 최대 소비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 절벽 추락은 전 세계 경기 회복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오바마ㆍ민주당과 공화당은 어렵게 살린 경기 회복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중산층 감세와 균형 예산 달성이라는 총론에는 의견 접근을 보고 있으나 각론, 즉 구체적인 시행 방법을 놓고서는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최대 쟁점은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고소득층(부유층)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과 세수 증대 방안이다. 여기에 올 연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연방부채 상한액도 발등의 불이다. 부채 상한 증액이 안 되면 미국은 `국가 디폴트(채무 상환 불이행)’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미 주요 언론매체 보도와 전문가 견해를 토대로 여야의 주도권 쟁탈 속내를 짚어본다.
◇ 백악관= 이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 만큼 주도권을 쥔 사람은 없다. 재선 성공으로 대선 공약인 `중산층 감세, 부자 증세’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지난 11ㆍ6 대선이 고소득층 증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성격도 있다고 했을 정도다.
오바마가 부자 증세를 강조하는 것은 향후 10년간 연방적자를 4조달러 감축하려면 2011년 예산통제법에 의한 정부예산 절감 1조달러 외에 부자 감세 종료로 인한 세수 증대 1조6천억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보장비 절감 등에 의한 추가 수입만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서 부유층 증세의 필요성을 널리 알릴 수 있고, 어떤 방안이든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서명할 수 있다고 시사 월간지 리즌 인터넷판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치적 환경이나 여론도 부자 증세에 우호적이다. 협상이 난항을 겪거나 심지어 깨져도 불리할 게 없다. 연말까지 타결하지 못하면 조지 W 부시 전임 행정부 시절 취해진 감세 조치가 종료돼 내년 1월부터 자동 인상된다. 오바마는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모든 소득계층의 세금이 올라가 국민의 불만을 사겠지만 공화당이 전체 국민의 2%에 불과한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인상을 반대했다고 둘러댈 수 있다. 2년 전 마지못해 부시 감세 조치를 연장했던 것과 영 딴판이다.
공화당은 올해 대선과 상원의원 선거(55석 대 45석)에서 졌고 하원에선 다수당 지위(234석 대 201석)를 유지했지만 2010년보다 8석을 잃었다.
여론도 오바마에게 유리하다. 최근 퓨리서치 조사에서 미국인은 협상 결렬시 책임을 공화당 53%, 오바마 29%로 봤다.
아무래도 공화당이 유권자 눈치를 더 봐야 하는 상황인 만큼 오바마 희망대로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현행 35%에서 39.6%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컨대 37% 내외에서 올리도록 하기는 쉬울 수 있다.
전국공화당하원위원회(NRCC) 의장을 지낸 톰 콜(63) 하원의원(공화ㆍ오클라호마)은 28일 동료 의원들과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재정 절벽을 피하기 위해 우선 공화당이 25만달러 미만 소득계층에 대한 감세 시한 연장에 동의하고 고소득층 증세 문제는 추후 논의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중산층 지지자들에게 "양당이 몇 주 안에 큰 틀에 합의하기 바란다. 가급적 성탄절 이전까지 성사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재계 인사들은 공화당이 부유층 증세를 수용하고 민주당이 정부 지출 삭감을 용인함으로써 재정 절벽 위기가 타개될 것으로 매우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한 것으로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전했다.
◇ 공화당= 아직은 강경하다. 아무리 선거에서 졌다고 해도 대선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 역력하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28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세금 문제에 관해 뭉치지 않으면 지지층으로부터 외면당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베이너 의장은 부유층을 포함한 모든 세금 동결이 `당의 확고한 입장’이라며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계속 이런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화당이 정부 지출 삭감에 반대하고 재정 절벽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외치는 민주당 의원들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너는 당에서 존경받은 전략가인 콜 의원의 중산층 감세 시한 연장 제안도 거부했다고 의회전문지 더 힐이 보도했다.
공화당은 `선(先) 정부지출 삭감 후(後) 모든 계층 감세 시한 연장’을 주장하고 있다.
베이너 의장은 정부적자 위기를 `탈선 직전의 화물열차’에 비유하며 "지금은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부 지출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때"라고 지적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세수 확보, 지출 축소, 고비용의 사회보장제도 개혁 등 균형 예산을 강조하면서도 부자 증세 외에는 구체적 시행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경제회의(NEC) 국장을 지낸 케이스 헤네시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백악관은 재정 절벽 협상 결렬 시 미국이 내년에 다시 경기 침체에 빠지게 되고 이는 국가뿐만 아니라 오바마의 집권 2기 운영을 어렵게 만들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 증세 없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공화당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일종이 엄포(블러핑)라고 주장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9일 브리핑에서 공화당이 소득 최상위 계층에 대한 세금 감면을 포함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6일 의회 지도부와의 백악관 회동 말미에 베이너 의장에게 연말까지 정부 부채 상한을 늘려달라고 요청했으나 베이너 의장은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답한 것으로 폴리티코는 전했다.
연방정부 부채는 지난 10월 말 현재 총 16조1천990억달러로 연말이면 법정 상한인 16조4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됐다. 의회는 지난해 8월1일 디폴트 시한에 임박해 부채 상한 증액안을 극적으로 통과시켰다.
공화당이 적어도 부채 상한 증액에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 이 카드가 재정 절벽 협상에서 어떻게 힘을 발휘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의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소득자 증세 요구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분위기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부유층 증세가 포함되지 않은 합의안을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부유층 세금 공제ㆍ감면 혜택의 축소ㆍ폐지만으로는 세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 증세가 반드시 합의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비에르 베세라 민주당 하원 간부회의 부의장도 불요불급한 검진 및 과다 진료비 청구를 막는 방법으로 메디케어(노인 의료보장)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 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나 기존 혜택을 줄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베세라 의원은 공화당 요구대로 노인이나 저소득층에게 쿠폰(바우처)을 줘 민영보험에 들도록 해 혜택이 줄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말했다.
케빈 매카시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는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펠로시 원내대표가 계속 재정 절벽 협상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말해 어쩌면 펠로시가 오바마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강경 진보파인 펠로시는 오는 2014년 중간선거(대통령 임기 중반 치르는 총선) 때 하원 탈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립적인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부유층에 초점을 맞추되 1년 정도 증세 없이 현행대로 가면 시간을 갖고 포괄적인 세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 조쉬 배로는 재정 절벽 협상 실패로 인한 새 경기 침체의 대가가 너무 커 오바마 행정부가 모험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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