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의 눈먼 돈
어느 날 아침 침대 머리맡마다 1,200달러씩 공돈이 놓여 있다면 사람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해 하다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릴 것이다. 당장 밀린 방세를 내겠다는 사람, 새 차 구입에 다운페이로 쓰겠다는 사람, 술집에 가서 거나하게 마시겠다는 사람, 한국에 추석 쇠러갈 비행기 표를 구입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모두가 즐거운 공상이다.
하지만 이런 공상이 해마다 현실로 이뤄지는 곳이 있다. 알래스카다. 그곳 주민들은 지난 30년간 정부로부터 매년 1인당 평균 1,200달러씩 거저 받아왔다. 두 자녀를 둔 부부는 하루아침에 눈먼 돈 4,800달러가 생긴다. 그 돈을 2~3년 모아 다운페이하면 자동차가 아니라 집을 한 채 살 수도 있다. 결혼식을 앞둔 처녀총각들에겐 요긴한 부주 돈이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지난 1969년 막대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노스 슬로프 동토를 석유회사에 개발하도록 허가하고 임대료로 9억300만달러를 받았다. 그해 주정부 예산의 5배가 넘고, 인플레율을 감안한 현재가치로 56억달러를 상회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 돈을 근거로 ‘알래스카 영구기금(APF)’이 주 헌법 개정을 거쳐 1976년 탄생됐다.
APF 공사의 건실한 투자관리 덕분에 기금은 현재 420억 6,800만달러로 늘어났다. 예를 들면 애플 컴퓨터 투자주식은 3배, 엑슨 등 석유회사 투자주식은 50%나 부풀었다. 주택, 상가, 사무실빌딩 등 부동산투자도 전국적으로 50여개에 달한다. 지난 2010년의 경우 APF가 얻은 유전임대 수입은 8억7,500만달러였지만 증권투자 수입은 69억달러나 됐다.
APF 공사는 1982년 46만여명의 주민에게 처음으로 1,000달러씩 배당금을 지급했다. 배당액은 투자실적에 따라 들쑥날쑥했다. 가장 적은 액수는 1984년의 331.29달러, 가장 많은 액수는 2008년의 2,069달러였다. 올해까지 31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배당금을 받은 주민은 총 3만 5,443달러 41센트를 챙겼다. 연평균 1,200달러에 약간 못 미친다.
실망스럽지만 금년 배당금은 고작(?) 878달러이다. 오는 10월 4일 주민 64만7,000명의 은행구좌에 일제히 자동입금 된다. 주식시장의 침체로 투자수익이 적었기 때문에 올해 배당금은 작년의 1,174달러를 훨씬 밑돈다. 지난 2005년의 845.76달러 이후 처음으로 1,00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배당금은 과거 5년간 투자수입 평균액의 10.5%로 산정된다.
알래스카의 양대 도시인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에 주로 모여 사는 3만여 한인들도 대부분 APF 배당금을 받는다. 노부모와 자녀 등 식구가 많아 1만달러 가까운 목돈을 받는 한인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배당금이 입금되는 매년 10월 초엔 식당, 술집, 카지노들이 만원사례를 이루고, 한국이나 타주 나들이에 나서는 한인들도 그 무렵 부쩍 늘어난단다.
하지만 뜨내기와 새내기들에겐 배당금이 없다. 알래스카에서 1년을 꼬박 살아야 받을 수 있다. 올해 알래스카로 이주하면 내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1년을 거주한 후 내후년 10월 첫 배당금을 받는다. 사기꾼도 있다. 하와이에 살면서 APF 배당금을 3만6,000여달러나 받아온 가장이 사기죄로 기소됐다. 사기꾼은 배당금 수혜자격이 영구 박탈된다.
눈먼 돈을 자랑하는 알래스카 주민들이 자랑하지 않는 게 있다. 엄청 비싼 물가다. 모든 생활용품의 90%가 타주나 외국에서 수입된다. 주도인 주노에선 올해 배당금 878달러로 1베드룸 아파트도 못 얻는다. 코카콜라 88팩(12캔짜리)을 살 수 있지만 LA에서는 그 돈으로 그 3배를 살 수 있다. 배당금에 주 소득세는 안 붙어도 연방소득세는 내야한다.
APF 배당금은 눈먼 돈이 아니다. 눈과 바람의 동토, 10월 이후 거의 밤만 이어져 올빼미 생활을 하는 주민들의 위로금이다. 어떤 한인은 가장 가까운 본토 땅인 워싱턴주로 한발 내려오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배당금이 지급된 30년간 주 인구가 거의 40%나 늘어난 것을 보면 알래스카는 역시 미국의 ‘마지막 미개척지(Last Frontier)’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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