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북한대표부서 가족송환 촉구 오길남 박사
"26년 전 북한에 남기고 온 아내와 딸들을 다시 만난다면 내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그들을 다시 부둥켜 않고 그간 참아왔던 울음이라도 한번 터트릴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여한이 없겠다는 오길남(사진·70) 박사. 그는 한반도의 분단 역사가 휘갈키고 간 상처의 흔적이다.
7일 오후 맨하탄 유엔 북한대표부 건물 앞에는 ‘통영의 딸’로 널리 알려진 아내 신숙자씨와 두딸 오혜원, 오규원씨를 북한에 남겨두고 홀로 탈출한 오길남 박사가 연신 땀을 흘리며 가족의 송환을 촉구하는 항의 구호를 힘겹게 외치고 있었다.
1985년 독일 브레멘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던 오 박사는 "당시 월북 인사들에게 회유당해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월북을 결심했는데 그때 나의 오판으로 아내와 두 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됐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 박사는 "그로부터 1년 뒤 북으로부터 또 다른 지식인들을 회유해 오라는 지령을 받고 평양을 떠나게 됐다"며 "가족을 본 마지막 날이 1986년 11월10일이었는데 그날은 바로 아내와의 결혼 기념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두 딸들의 나이가 각각 10세, 7세였다는 오 박사는 "큰 딸 혜원이 마침 열 감기를 앓고 있어서 자꾸 엎어달라고 보채더라. 두 딸을 차례로 엎어주며 지방 공장을 시찰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오 박사는 "북측 요원들과 코펜하겐에 도착한 뒤 가까스로 그들을 따돌리고 탈출에 성공했다"며 "당시에는 독일 정부에서 가족의 송환을 적극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측에서 발표한 아내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있는 오 박사는 "과연 나와 우리 가족이 북한에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되물으며 "설사 북측의 말처럼 아내가 사망했다면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유골이라도 받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
오 박사는 "북측은 제발 지난 26년간 죄 없이 고통받아온 두 딸들을 송환해 달라"고 호소하며 "부디 살아생전에 두 딸의 손을 붙잡고 용서를 빌 수 있도록 해달라"며 한인들의 많은 성원과 협조를 부탁했다. <천지훈 기자>
A8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