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에 거주하는 흑인 남성 멜린도 스튜어트는 사회적 불평등이 그가 겪는 수면장애의 부분적 원인이라고 말했다.
멜린도 스튜어트(41)는 지난 반평생을 수면장애와 씨름했다.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고 침대에 고단한 몸을 누일 때마다 잠은 쌀쌀맞은 배우자처럼 등을 돌렸다. 기억의 끝점인 유년시절부터 잠은 그에게 안락한 휴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시간을 맞춰 침대머리로 달려와 주지 않았고, 길게 머물지도 않았다. 스튜어트에게 숙면이란 경험과 유리된 한낱 개념에 불과했다.
수면의 양과 숙면 정도 백인이 최고·흑인 최하위
소득·학력 비슷해도 사회적 불평등이 영향 미쳐
잠 부족 땐 인종 불문 심장병·고혈압 등 후유증
스튜어트는 숙면을 빼앗아간 근본원인을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나름대로 짚이는 게 있다고 말했다. 그의 용의선상에 오른 수면방해 요인은 열악한 주거환경이다.
그가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마이애미의 빈민촌은 소란스럽고, 위험한 곳이었다. 거의 매일 밤 총소리가 들렸고, 거리에서는 일상적으로 마약거래가 이루어졌다. 편히 잠을 이루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다.
현재 브루클린의 이스트 플랫부시에 거주하는 스튜어트는 환경적 요인과 함께 260파운드에 달하는 자신의 몸무게를 수면장애를 일으킨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창 때 310파운드를 웃돌았던 체중이 어떤 식으로건 수면장애에 손을 보탰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수면 전문가들은 그의 추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스튜어트의 인종적 배경, 즉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용의자 명단’에 추가했다.
지난 몇 년간 인종적 배경과 숙면과의 연결고리를 연구해온 전염병학과 통계학, 그리고 심리학 분야의 전문가들은 ‘잠의 여신’이 피부색깔을 가린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최소한 미국의 경우에는 그렇다.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이자 인종갈등의 원천지이다.
이들이 제시한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면의 양과 질은 비히스패닉계 백인이 최고다. 백인은 오래 잘 뿐만 아니라 잘 잔다. 반면 흑인은 수면시간이 전체 인종그룹 가운데 가장 짧고, 숙면 등급 역시 최하위에 해당한다.
과학자들은 인종과 수면 사이의 연결고리를 밝혀내는데 성공했지만 아직까지 그 이유는 규명하지 못했다.
인종적 배경이 잠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장 최근 증거는 지난 6월 미 수면전문가협회(APSS)의 연례 모임에서 나왔다.
APSS 총회에서 발표된 두 건의 논문 가운데 한 건에 따르면 시카고 지역 백인의 하루밤 평균 수면시간은 7.4시간, 히스패닉과 아시안은 6.9시간, 흑인은 6.8시간이다.
얼마나 쉽게 잠드는지, 한번 잠에 빠지면 깨지 않고 얼마나 오래 자는 지를 기준삼아 점수를 매긴 수면의 질은 흑인에 비해 백인이 훨씬 높았다.
이번 연구결과는 심혈관질환, 무호흡 수면증과 비만 등 다른 위험요인들까지 감안해 조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이전의 연구와 차별된다.
노스웨스턴대 페이버그 의과대학의 예방의학 조교수인 머시디스 카넨손 박사는 심혈관질환, 무호흡 수면증과 비만 외에 숙면을 방해하는 마지막 공범으로 사회경제적 요인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네손 박사는 “아직도 상당수준의 인종격리가 유지되고 있는 시카고에서 흑인과 히스패닉은 대체로 프리웨이에 가까운 지역에 거주한다”며 “이들은 고속도로와 심야업소의 소음에 노출되고 잠재적인 범죄위험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 지역 거주자들은 또한 낮은 임금수준 탓에 하루에 여러 개의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거나 근무시간이 일정치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모두가 수면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불평등이 수면을 방해하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다.
이에 앞서 2005년도에 발표된 연구 보고서도 흑인 남성들의 하루밤 평균 수면시간이 가장 잠을 잘 자는 그룹으로 확인된 백인 여성들에 비해 82분이나 짧다고 밝혔다. 이 연구도 시카고 거주자 66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이다.
물론 사회적 불평등의 실제 효과를 따로 떼어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보고서를 작성한 시카고대 의과대학 조교수인 크리스텐 넛슨 박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단순한 소득과 교육 수준 차이보다 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등한 소득과 교육수준을 지녔다 해도 흑인 남성에게는 백인 남성이 느끼지 못하는 사회적 스트레스가 따른다”고 지적했다.
흑인 남성인 스튜어트는 사회적 차별이 그의 수면장애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흑인 남성은 고등 교육을 받았다 해도 사회의 내재적 불평등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스튜어트는 소수계 학생들에게 과학과 수학 분야의 직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다수파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런 불평등은 소수계에 스트레스를 주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수면 전문가들은 사회적 불평등을 ‘자치권’의 문제로 파악한다.
롱아일랜드 소재 스토니브룩 유니버시티 예방의학과 조교수 로렌 헤일 박사는 2009년에 발표된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밤에 잘 자고 아침에 개운하게 깨어나는 선순환을 반복 한다”고 밝혔다. 흑인을 비롯한 소수계와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는 인구집단은 이런 선순환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헤일 박사는 이어 2010년도에 나온 또 다른 연구결과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특정 인종과 성에 따라 수면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배우자와의 이혼이나 사별과 같은 경험은 히스패닉 남성의 수면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반면 아시아 남성의 경우 장가를 못간 독신상태가 수면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교육수준이 낮은 아시아 여성이 가방끈이 비슷하게 짧은 백인 여성에 비해 수면장애를 겪는 비율이 높았다.
기혼 남성, 혹은 동거인을 둔 남성은 인종이나 상대와의 ‘관계의 질’에 상관없이 잠을 잘 자는 경향을 보이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동거인 유무보다 관계의 질이 수면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는 문화 역시 수면과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인은 타인종에 비해 어린 시절부터 일정한 취침시간에 길들여지고 보호자가 책을 읽어주는 가운데 잠으로 빠져드는 패턴에 익숙해진다.
NIH는 광범위한 인지력과 행동 발달에 큰 영향을 주는 “언어에 바탕을 둔” 취침 패턴은 평생 지속되며, 성장한 후에도 정해진 시간에 쉽게 잠 속으로 빠져들도록 도와준다고 밝혔다.
잠이 부족하면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비만과 심장병, 신장질환, 뇌졸중과 고혈압의 위험이 높아진다. 우울증, 심한 감정기복, 학습능력 감퇴도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데서 오는 장기적 후유증이다.
전문가들은 “유럽인들이 오후 시간의 일부를 낮잠에 할애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인들은 무언가 다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수면시간을 줄이려든다”며 “수면장애를 없애려면 우선순위부터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