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한국 육군에 청렴강직하기로 유명한 H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는 1군 사령관(후일 합참의장)을 맡고 있을 당시 독특한 인사방침을 지니고 있었는데 참모나 사단장들이 “어머님이 너무 외로우셔서” “아버님이 편찮으셔서”등등 부모 걱정을 이유로 내세우면 쾌히 후방출장을 승낙하거나 보직을 희망지로 옮겨 주었다. 대신 “아내가 몸이 불편해서” “아이가 학교 문제 때문에”운운하면 “네가 도대체 군인이냐” 소리 지르며 면박을 주고는 했다.
H 장군에게 “부모 생각하는 참모와 처자식을 중요시하는 참모를 차별대우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옛날부터 효자는 충신이며 용감한 군인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와 자식에 집착하는 군인은 연약하고 전쟁터에서 용감하지 못하며 으레 금전적 부정에 관련되어 신세를 망친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한국이 인류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의 효(孝)사상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유교에서는 효를 모든 행실의 근원으로 삼고 있다. 효가 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도덕기준인 삼강오륜의 오륜에도 ‘부자유친’(父子有親)이 첫 번째로 올라가 있다. 서양인들은 한국인의 이 ‘효’사상을 너무나 부러워하고 높이 평가한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났다. 은퇴한 후 부모들이 30여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적응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가정의 관심사였지만 앞으로는 “고령의 부모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가 집집마다 큰 숙제로 다가올 것이다. 장수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핵가족 개념이 시험대에 올라있다.
베이비 부머들이 고령화에 접어들었지만 핵가족 개념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 부모를 섬기겠다는 젊은이들이 30%에 불과하다. 부모들이 돈을 벌어 놨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소셜 시큐리티만으로 먹고 살수있느냐하면 그것도 역시 아니다. 정부연금만으로 생활하면 여생을 빈민층 수준에서 머물게 된다. 아버지들이 체면을 구기며 여생을 마쳐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자식들은 효도를 개인적인 의무에서 국가적인 의무로 넘기려 한다. 그러나 유럽을 보라. 사회보장 제도가 지금 진통을 앓고 있지 않은가. 미국도 2035년부터는 소셜 시큐리티 자금이 바닥이 난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결론적으로 장수시대의 이 난제를 타결하려면 자녀들이 어느 정도 부모를 돌보는 수밖에 없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효(孝)사상이 다시 21세기의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현대화의 물결에 너무 휘말려 효사상을 중시하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여기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현대화가 우리의 문화를 해체하여 서양문화에 동화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전통문화를 잃어버린 현대화는 현대화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심각한 문화적 위기다.
사실 효도란 자식들이 강조해야 할 덕이지 부모가 들고 나오기에는 좀 어색한 과제다. 군신유의를 임금이 강조하는 뻔뻔함을 연상케 한다.
‘아버지의 날’이 다가오는데 ‘효’운운하려니까 나도 좀 쑥스럽다. 그러나 개인적인 효도와 민족문화로서의 효사상은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세계에 자랑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재산을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이 되겠는가. 역시 효사상이다. 아버지들은 옆구리를 찔러서라도 자식들로부터 절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늙은 부모가 되어 비참한 여생을 보내지 않게 하려면 효에 관해 우리가 무언가 시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억지로라도 효를 가르쳐야 한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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