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은 입적하시기 전 마지막 행한 법문에서 “중에게 돈 갖다 주지 마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이 말이 갖는 의미가 잘 이해가 안 되어 법정스님의 ‘무소유’ 이론에서 파생되는 하나의 주장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지난주 조계종 간부 승려들의 억대 도박사건을 보고 법정 스님이 왜 세상을 떠나기 전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부패한 조계종 종단 등을 겨냥한 불교계 정화운동 성격을 지닌 발언이다.
승려들의 도박기사를 읽고 “도대체 그런 엄청난 돈이 어디서 났죠?”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도박사건 못지않게 쇼킹한 것은 조계종 주지 등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손석희 씨와의 인터뷰에서 스님들이 돈이 어디서 나서 그런 도박판을 벌이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건 도박의 문제가 아닙니다, 도둑질이죠. 스님들이 돈벌이를 합니까? 월급을 탑니까? 신도들이 부처님을 위해서 잘 써달라고 갖다 준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도둑질 한 거야요.”
“(조계종)총무원장이 108일 동안 108배 한다 구요? 쇼 입니다 생 쇼예요. 한강에 가서 빠져 죽어야 해요. 무슨 낯짝으로 참회 합니까. 이차돈처럼 분신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기자생활 몇 십년 하면서 스님이 스님을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처음 봤다. 표현이 너무나 쇼킹하다. 도대체 성호 스님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과거 총무원장 물망에 올랐을 때 결사반대를 외쳐 미움을 산 것이 싸움의 발단이다. 자승 스님은 총무원장에 취임하자 성호 스님을 비구니 강간 등의 혐의(본인은 적극 부인)로 승려 족보에서 제적해 버렸다.
허구한 날 조계종은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 승려에는 사판승과 이판승이 있다. 사판승은 절의 운영과 사무를 맡아보는 승려로 돈을 만진다. 이판승은 수행에만 전념하는 승려다. 그런데 조계종 승려 1만5,000여명 가운데 이판승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 오늘의 한국 승려는 대부분 사판승이다. 조계종 사찰이 전국에 2,000여개나 되며 1년에 수십, 수백억의 예산을 다룬다. 그런데 이 주지들을 총무원장이 모두 임명하니 원장 선출이 싸움판일 수밖에.
사판승들은 청빈과 무소유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조계사 근처 청진동 뒷골목에서 스님들이 술 먹고 고기 먹는 광경을 여러 번 본적이 있다. 식당주인에게 “저 사람들 승려 맞느냐”고 물었더니 “사판승은 술 고기 먹어요”라고 대답했다. 원래 ‘이판사판’이란 단어는 바로 이판승과 사판승의 어울리지 않은 사이를 두고 생겨난 말이다. 승려들의 도박이 말썽이 된 요즘 ‘이판사판’이라는 단어가 실감나게 느껴진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판사판’이란 ‘막다른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나와 있다.
화두를 깨우치고 경전을 연구해 눈을 떴다 해서 승려가 아니다. 승려는 무명의 바다와 비리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중생을 건져내는 수행자다. 그것이 공양의 대가로 주어지는 승려의 의무다. 패거리를 짓고 자기 멋대로 승단을 운영하는 것은 부처님 뜻이 아니다. 석가는 무리를 짓지 않았고 후계자도 지명하지 않았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이것이 석가가 승단에 남긴 말이다. 28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 정신이 무엇인지 조계종 승려들이 다시 공부해야 할 단계에 와있다. 도박을 승려들의 치매예방을 위한 놀이문화라고 해명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계율이 사문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이 한국 불교가 직면한 위기다. 한국 불교가 이판사판에 이르렀다.
<이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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