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사이엔 친함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부자유친은 동양윤리의 기본인 오륜 가운데 하나이다.
혈통적으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법률상, 일촌지간인 부자지간은 이 세상 그 어떠한 대가로도 얻을 수 없고 교환할 수도 없는 유일무이한 분신으로 혈육을 전수하는 절대적 관계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깊은 애정과 부모에 대한 자녀의 극진한 효성이 상대적으로 실행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온효자 부모 아래 반효자 나온다,” “한 부모 열 자식 거느릴 수 있지만 열 자식 한 부모 모시기 어렵다”는 속담은 부모 자녀간의 상대적 애정의 차이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이와 같이 부모의 지극한 사랑은 자녀에겐 거울이 되어 반사적인 감화를 받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어찌되었든 흐르는 세월과 함께 변화되는 세속 가운데 4,5대가 함께 동거하던 옛날 대가족제도에서 부모 어린이만이 함께 사는 단촐한 현대의 소가족제도에 이르면서 효도의 개념도 이에 따라 변한 것 같다.
옛 효성과 자녀 사랑의 십분의 일만 되어도 효자가 되는 변질된 세속 가운데 “어릴 땐 나의 자식 고등학교 졸업하면, 4촌 대학 졸업하면, 8촌 결혼하면, 사돈의 8촌 유학가면 해외동포” 된다는 풍자적 속설을 보면 오히려 부자간이 멀어져 가는 서글픈 현실이다. 오죽하면 소, 전답, 아파트 팔아 고생으로 가르친 자식이기에 상아탑(象牙塔) 아닌 우골탑(牛骨塔), 골병탑(骨病塔) 등의 신조어가 생긴 교육열은 자랑스럽지만 자식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치신 노부모님도 살펴보는 것이 자식만 아는 짐승과 차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날 나의 고향엔 한 효자가 살았다. 그는 근친 하나 없는 외로운 어릴 시절 부모까지 잃어 불행한 고아로서 어려운 고생 끝에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도 성공한 분이었다. 하지만 술에 취하면 비감에 슬피 우는 그 사연은 효행을 하고 싶어도 받을 분이 없구나, 도움을 주고 싶어도 받을 근친이 없구나 하며 풍요 속에 흘리는 그의 눈물에는 교훈이 있었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돌아가신 뒤엔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송강 정철.
어찌 되었건 효행은 모든 행위의 으뜸이요, 부자유친은 가정화목의 근본임을 강조하고 싶다. 부모 없는 자녀 없고 효행 없는 화목 없으니 충효 실천하여 자녀 때에 드린 효성 부모 되어 돌려받아 자자손손 이어가는 효도가문 이룩하여 하늘같은 부모은혜 자손만대 전해주자.
정두경
충효국민운동 워싱턴본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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