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공직자가 게이(동성애자)인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에드 머리 워싱턴주 상원의원과 샘 아담스 포틀랜드 시장의 건재가 그 증거다. 공직자가 음주운전을 해도 별로 괘념하지 않는다. 워싱턴주 교육감인 랜디 돈이 작년에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경찰에 걸렸지만 자리보전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무고한 시민을 죽인 경찰관조차도 탈이 없다. 작년 8월 인디언 조각가를 시애틀 다운타운 대로상에서 다짜고짜 총격살해한 이안 버크 순경은 형사범으로 법정에 서지 않고 스스로 사직했다. 경찰국장이 총격의 부당성을 들어 징계하겠다고 벼르지 않았다면 그는 제 발로 걸어 나가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공직자가 돈 문제, 특히 공금문제 비리에 휩쓸리면 액수와 상관없이 곧바로 끝장이다. 시애틀 교육구의 마리아 구들로-존슨 교육감이 금전 스캔들 때문에 엊그제 하루저녁에 목이 날아갔다. 그녀는 업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임용계약을 2013년까지 연장 받았지만 도루아미타불이 됐다.
구들로-존슨의 비극은 자기도 모르는 180만 달러의 공금유용 의혹이 주정부 감사관에게 들통난데서 비롯됐다. 본인은 연간 5억5,600만 달러의 교육구 전체 예산에 비하면 180만 달러는 ‘새 발의 피’ 정도로 작을 뿐 아니라 교육구의 방대한 일을 최고경영자인 교육감이 일일이 꿰찰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원래 이 돈은 교육구의 각종 건설사업을 소수계 소규모업체들도 따낼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에 쓰도록 돼 있었다. 실무책임자였던 실라스 포터는 이 돈을 ‘메트로폴리탄 시애틀 도시연맹(MSUL)’ 등 사회단체와 업소에 멋대로 지급했다. 감사관은 이들 업소가 교육구 일을 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미시간주의 가구수선공 출신인 포터는 교육구 직원으론 자질미달이었지만 2001년 프레드 스티븐스 당시 시설국장에 의해 채용돼 승승장구한 끝에 소수계 지원 프로그램 책임자가 됐고, 나중엔 교육구 프로그램과 똑같은 이름으로 개인회사를 차려 대외적으로 자기업소가 교육구 프로그램을 대행하는 것처럼 속였다.
구들로-존슨은 포터의 이 같은 비리를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특히 시애틀타임스가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연일 사설과 칼럼을 통해 교육구의 신뢰를 실추시킨 책임은 최고경영자가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타임스는 작년 6월 사표를 내고 행방을 감춘 포터도 끝내 플로리다에서 찾아냈다.
시애틀교육위가 2일밤 만장일치 투표로 구들로-존슨의 해임을 가결한 명분은 ‘신뢰실추’였지만 필자가 보기엔 ‘끼리끼리 해먹기’가 진짜 이유 같았다. 구들로-존슨, 포터, 스티븐스, MSUL 등 관련자가 모두 흑인(단체)이기 때문이다. 이날 투표에서 유일한 흑인 교육위원인 해리엄 마틴-모리스는 다행히(?) 찬성표를 던졌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필자는 미셸 리(한국 명 이양희) 전 워싱턴DC 교육감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씨는 미국 수도의 공교육 총수로 임명된 최초의 한인이자, 최초의 아시아인이며 최초의 비 흑인으로 2007년부터 3년간 재임하는 동안 괄목할만한 교육개혁 실적을 올렸지만 흑인사회의 ‘끼리끼리 견제’를 심하게 받았었다. 이씨가 지난해 물러난 것은 돈과는 무관하다. 자신을 임명했던 시장이 재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인 중에도 돈 문제 때문에 추락한 정치인이 있었다. 90년대 ‘재미동포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김창준 전 연방하원 의원이다. 최초의 한인1세 연방의원이었던 그는 불법 정치헌금이 문제가 돼 3선에서 멈췄다. 한인사회의 ‘끼리끼리’ 행태가 자충수를 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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