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당찮게도 중학생 때 소설을 쓸 생각을 했었다. 고교생 형들이 잡담하는 중에 “나 말이야, 요즘 고학생과 연상의 다방마담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구…”라고 떠벌이는 말을 듣고 나도 로맨스소설을 쓴답시고 한동안 낑낑댔었다. 그 선배가 실제로 소설을 출간했다는 얘기는 그 후 못 들었다.
하이틴 시절엔 누구나 문학소년이요 문학소녀이다. 학창시절에 시 한편, 산문 하나 안 써봤다면 거짓말이다. 그 나이엔 연애편지도 시다. 대학입시 준비 와중에서도 수업시간에 몰래 소설을 읽었다. 국어선생님들은 십중팔구 시인이나 수필가로 행세했고, 그 주위엔 늘 문학지망생들이 몰려들었었다.
훗날 실제로 문인이 돼 책을 낸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뜻밖의 문인친구도 나온다. 고교시절 교장선생님도 알아준 ‘차돌주먹’이었던 한 친구는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에 책을 냈다며(더군다나 LA에서) 한권 보내줬다. 여태까지 책 한권 못 낸 필자보다 나았다. 순수문학은 아니지만 글 솜씨가 놀라웠다.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쓸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반세기 가까이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아온 필자는 요즘도 칼럼을 쓰면서 진땀을 흘린다. 주제 정하기부터 어렵고, 그 주제가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지 않도록’ 끌고 가기도 어렵다. 글 내용을 1,000자 내외로 압축하는 건 더 어렵다.
누구나 글쓰기 잠재력을 갖고 있다. 쓸 기회가 없을 뿐이다. 수년전 총영사 관저의 한 송년모임에서 당시 김재국 총영사가 ‘3행시’ 게임을 제의했다. 참석자들이 즉석에서 3행시를 읊었는데 수준급 작품이 많았다. 작년엔 필자가 속한 산악회의 인터넷 카페도 3행시 경연대회를 열었다. 역시 걸작들이 쏟아졌다.
좋은 글엔 쓴 사람의 인격, 성품, 학식, 사상, 경륜과 가치관 등이 묻어 있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이 감동한다. 고작 24개의 글자를 섞어서 쓴 글로 남을 설득시키고 감동시킨다는 건 보통 재주가 아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시험으로 곧잘 활용된다. 이조 때 과거(科擧)가 그렇고 요즘 대학입시의 에세이가 그렇다.
한인들이 글쓰기와 담을 쌓은 것 같다. 쓰기는커녕 남의 글을 읽지도 않는 듯하다. 밤새워 한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많아도 글을 읽거나 쓰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나름대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 글쓰기 공부와 작품발표를 함께 하려고 문학단체를 만들기도 한다.
4년전 창립한 한국 문인협회 워싱턴지부(회장 김윤선)가 지난 주말 축제를 벌였다. 연례 문학작품 공모전에서 입상한 8명의 신인작가들을 시상하는 잔치였다. ‘아버지의 끔’이라는 수필로 대상을 받은 박연순씨와 ‘나무처럼 나에게도’라는 시로 우수상을 받은 이창근씨가 각각 수상작품을 낭독(낭송)하는 영광을 누렸다.
문인협회는 작년 가을 회원작품을 담은 ‘시애틀문학’ 제3집을 출간했다. 수록된 거의 100편의 시와 수필을 읽으며 필자는 이들 회원 중에 장차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오지 않더라도 손해날 것이 전혀 없다. 글을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본인들은 정서순화와 감성회복의 혜택을 만끽하기 때문이다.
윤여춘(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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