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말 같지만 등산할 때는 날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지난 1일 새해맞이 등반모임을 가졌던 산악회의 한 여성회원도 타이거 마운틴 정상에서 날치기를 당하고 비명을 질렀다. 손에 들고 있던 간식거리 비스킷을 새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치기해간 것이다.
높던 낮던 시애틀 일원의 산엔 어김없이 날치기 새들이 진치고 있다. 등산객이 내미는 손바닥에 겁도 없이 날아와 앉아서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다. 바닷가에도 날치기가 있다. 사람들의 손에서 먹거리를 잽싸게 채가는 갈매기이다. 공중에 던져준 프렌치프라이가 바다에 떨어지기 전에 갈매기들이 번개같이 날아와 부리로 낚아챈다.
하긴 산이나 바닷가에 가지 않아도 주택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까마귀와 갈매기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힘 안들이고 배를 채우기 위해 야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인간사회에 더부살이하는 이런 새들은 별로 매력이 없다. 닭이나 오리 같은 가축과 진배없다.
요즘 미국인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는 자연친화 취미가 있다. ‘새 보기’이다. 문자를 쓰자면 조류관찰(鳥類觀察)이고 영어로는 ‘Bird Watching’이다. 허허벌판과 바닷가와 심산유곡을 일부러 돌아다니며 까마귀나 갈매기가 아닌 숨은 새들을 찾아 구경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새 보기를 즐기는 미국인들이 4,000여만 명에 달한다. ‘버더(Birder, 새 보는 사람)’나 ‘버딩(Birding, 새 보기)’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이들은 등산하거나 산책하는 김에 새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새를 보기 위해 등산도 하고 산책도 한다.
이들이 속한 ‘오듀본 협회(Audubon Society)’는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자연친화 비영리단체 가운데 하나다. 1800년대 북미주 조류관찰의 대가였으며 새에 관한 권위 있는 책들도 여러 권 저술한 존 제임스 오듀본의 이름을 따 1905년 결성됐다.
이 협회는 워싱턴주를 비롯한 24개 주에 주 단위 본부, 시애틀을 포함한 전국 500여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다. 규모가 크던 작던 오듀본협회는 회원들의 새 보기 나들이를 수시로 주선할 뿐 아니라 조류 외에 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 보호캠페인에도 앞장서고 있다.
산, 바다, 내해, 강, 호수, 늪지, 개활지, 사막 등 모든 서식환경이 갖춰진 워싱턴주는 천혜의 새 보기 명소이다. 특히 겨울엔 기러기와 두루미 등 철새들이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며 쉬거나 아예 월동한다. 필자 아파트의 웅덩이에도 기러기가 찾아와 겨울을 넘긴다.
워싱턴주 오듀본 협회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6개의 새 보기 코스 지도를 펴냈다. 캐스케이드 루프, 올림픽 루프, 쿨리회로 루프(중부), 팔루스-파인스 루프(스포켄 일원), 사우스웨스트 루프(콜럼비아 강 유역), 선&세이지 루프(야키마 일원) 등이다. 협회는 올 가을에 7번째 코스가 될 퓨짓 사운드 루프의 지도를 펴내기 위해 현재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워싱턴주에서 연중 볼 수 있는 새는 모두 346종이나 된다. 주 서북부의 캐스케이드 루프에서만 225종을 볼 수 있다. 주 내에서 가장 유명한 겨울철새 도래지인 이곳엔 미국의 나라 새인 대머리 독수리 등 맹금류도 서식하고 있어 타주의 버더들까지 몰려온다.
요즘 스캐짓 밸리에 버더들이 몰려들고 잇다. 봄철에 튤립꽃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곳 허허벌판에 수천, 수만 마리의 흰기러기(snow-goose)가 내려 앉아 눈밭을 방불케 한다. 이따금 하늘을 가리며 일제히 날아오르는 장관을 차를 타고 지나가며 구경할 수 있다. 사냥시즌이 끝나고 철새들이 떠날 채비를 시작하는 2월이 ‘버딩’의 피크시즌이다.
버딩은 기력이 쇠해 등산이 버거운 노령에 좋은 취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돈도 많이 들지 않는다. 쌍안경 하나면 족하고 망원경을 추가하면 더 좋다. 꼭 멀리 가지 않고 동네 공원에서도 즐길 수 있는 ‘목적 있는 산책’이므로 한인노인들에게 권장할 만하다.
윤여춘(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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