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치 않은 인연으로 같은 곳에 9년, 10년을 못 채우고 다정했던 김 여사 부부가 세상을 떠났다. 4월에 피었던 자목련 꽃이 초록 이파리 사이로 다홍 꽃송이를 함빡 열고 다시금 나를 반기고 있다.
어느 이른 봄날 김 여사가 “집 앞의 목련꽃이 딱 한 송이 피었다고 남편이 이 여사에게 전화를 하래요. 시를 쓰게 전화를 하라고 그러지 않아요 글쎄.” 과묵했던 김 여사가 남편 말을 거듭하던 그 때가 생각난다. 봄에 피었던 자목련꽃이 복중에 보라빛도 아닌 다홍빛으로 삼삼오오 잎새 사이에 모여 있는 그 자태를 바라보노라니 지난 날 추위 속에서 처연하게 꽃망울을 터뜨렸던 목련꽃과 함께 그 분의 음성이 생생하게 돌아온다.
내 나이 화려하고 젊은 시절 내가 몹시도 좋아했던 목련화. 기다리던 봄, 해마다 몇 차례 눈비가 뿌리고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묵 자욱 선연하게 입춘의 축문이 대문을 장식한 뒤에도 눈보라 속의 산고를 치루면서도 때를 잃지 않고 꽃망울을 터뜨려 절기를 일깨우던 목련화. 연탄 개스가 새어나오는 방에서 어린 아들과 잠을 자며 겨우내 창문을 열고 닫느라 밤잠을 설치면서도 뜰 앞 한그루의 목련꽃이 고아서 코가 시린 밤을 지새우던 때 살갗이 트는 매서운 바람 속에서 외씨버선 같은 흰꽃을 피기 시작하면 나는 소녀처럼 모든 괴로움을 잊곤 했었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문득 떠오른 박인환 시인님의 ‘목마와 숙녀’ 시의 한 구절, ‘세월은 가도 정은 남는 것.’ 이런 생각이 가슴을 스치면서 내가 몹시 아프던 날 닭죽을 진하게 끓여 가지고 내외분이 보듬고 오셨던 저녁 날이 떠오른다. 세상을 사노라면 귀한 인연도 없지 않은 것을…
바쁜 일상을 비집고 자메이카 수양회에 가 있는 사랑하는 딸에게 불현듯이 수화기를 들고 싶어진다. 주일 미사에 참석치 못한 이 아침에 때 아니게 피어난 목련화보다 더 진하게 가슴에 오는 수난의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와 함께 헌화하고 싶은 고운 목련꽃은 오랜 기다림의 결실인가 아니면 쉽게 저버린 청춘의 아쉬움일까? 가족같이 따사로웠던 두 분을 회고하며 우리는 계절마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 만월을 왜소하게 하는 온난화, 온 지구를 휩쓸고 있는 태풍, 지진 등 허다한 재앙 앞에 서서 불볕 속 붉게 다시 핀 목련화는 나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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