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비참한 인류의 적이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본 6.25 전쟁은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 절실히 또 다시 깨닫게 된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 속에 다 잊고 살다가도 6월이 되면 아련한 6.25전쟁의 추억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등교하자마자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담임 선생님이 급한 목소리로 집으로 빨리들 돌아가라고 했다. 우르르 교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운동장에 낯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총대를 들고 왔다갔다하고 누가 흘렸는지 피가 낭자함을 보고 놀라 걸음아 날 살려라 숨을 헐떡거리며 단숨에 집으로 뛰어들었다.
얼마 후 아버지가 인민군에 잡혀 끌려가다가 가까스로 도망쳤으나 다시 붙잡혀 총살직전에 극적으로 살아오셨다.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는 형제애가 두터우셔 전쟁 중에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며 이웃도 모르게 한밤중에 식구들을 데리고 후암동 작은 집으로 옮겨가 삼형제 대가족이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적산 가옥의 다다미를 들추고 반 지하에 들어가 숨어 지내시고 수시로 빨갱이들이 무단으로 집으로 쳐들어와 온통 방안을 뒤지고 총을 겨누며 위협하던 그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벌벌 떨기 일쑤였다.
엄마와 작은 엄마는 남대문 시장으로 장사를 나가 값나가는 물건으로 쌀, 감자 등을 맞바꾸어 식량을 구해오곤 하셨다.
오빠와 나, 동생, 사촌 동생은 하루 종일 방안에서 술래잡기 소꿉장난을 하기도 하고 그래도 내가 큰언니라고 8살인 나이에 동생에게 밥을 챙겨 먹이고 오빠와 밀을 맷돌에 갈아 밀가루를 만드는 일도 잘 했다. 오빠가 소리친다. 밖을 내다보라고 비행기가 지나가면서 어른 팔뚝만한 검은 물체를 뚝뚝 떨어뜨리고 간다. 잠시 후 펑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와 불길이 솟아오르는데도 그렇게 무섭지가 않았다.
어느 날 모처럼 하얀 쌀밥과 고기국으로 온 가족이 아침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쿵 소리를 내며서 온통 먼지가 쏟아지며 문짝이 넘어가고 아수라장이 됐다.
가까운 곳에 방공호가 있었는데 들락날락하는 사람을 보고 폭탄을 내려친 것이다. 집 근처에는 다리에 폭격을 맞아 너덜너덜 피를 흘리며 어디론가 울부짖으며 업혀가는 이웃 아저씨, 도망가다 총에 맞아 죽어가며 같은 동포끼린데 물 한 모금 달라고 애원하다 죽은 인민군 장교, 그리고 폭격에 죽은 많은 시신이 가마니에 쌓여 있는 것을 무수히 보았다.
얼마 후 우린 한강 다리가 끊긴 후에 영등포역까지 걸어가 마지막으로 떠나는 짐을 가득 실은 기차 위에 올라탔다. 1.4후퇴 때 겨울이라 얼마나 추었는지 피난길이 더욱 힘들었다. 뚜껑 없는 짐 열차위에 콩나물시루처럼 실려 차가운 칼바람을 견디며 많은 날들을 보내며 험난한 여정 끝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 피난열차에 탔던 많은 갓난아기는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밟혀죽고 밟혀죽은 아기를 끈을 매어 기차 밑으로 내려놓고 떠나는 아기엄마의 매정함이며 센바람에 날아가 죽고 터널을 지나다 목이 걸려 죽은 사람도 많았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기차가 예고 없이 설 때면 배고픔을 덜기 위해 부지런히 어른들은 기차 밑으로 내려가 떡이며 김밥을 사서 아이들에게 먹였다,
부산역에 내린 우린 시장 근처에서 허기를 채우고, 완전 노숙자로써 갈 곳이 없어 서성거리는 우릴 초량동 성당의 고마운 교회분이 오셔서 성당부지 공터로 안내해주었다. 살얼음이 언 추운 날, 잠은 안 오고 초롱초롱 반짝이는 별을 세면서 촉촉이 내린 이슬에 젖은 이불을 덥고 별 하나 나 하나를 세며 짠 고등어를 먹어 목이 말라 밤새도록 얼음을 깨서 먹던 어린 피난시절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현실을 초월한 동심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이리라. 유월의 푸르름과 함께 6.25전쟁의 아련한 추억 속을 더듬으며 우리의 삶도 나날이 푸르름으로 건강함 속에서 더 보람된 삶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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