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 죽인다. 거의 20년의 역사를 가진 워싱턴 솔로이스트 앙상블이 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의 프로그램으로 육, 해, 공, 해병대 군가와 뽕짝과 오페라를 들고 나왔다.
이것은 마치 철모 쓰고 기관총 어깨에 메고, 막걸리가 찰찰 넘치는 뚝배기 잔 들고 대나무 곰방대 입에 물고, 반짝반짝 빛나는 구슬 달린 야회복에 하이힐 신고 무대에 나와 청중 앞에 서는 격이렷다. 그거 참 한번 볼만하겠다!
그런데 어찌하여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군가와 뽕짝과 오페라를 들고 6.25 60주년 기념 음악회를 하려는 것일까? 이 기발한 착상의 배후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이 음악회에는 한국전쟁 베테랑 수백 명이 특별 귀빈으로 초대되었다. 대부분이 80세를 넘어 90세를 바라보는 이 노전사들은 이제 허리는 굽고 눈은 많이 흐려지고 좀 멀리 걸으려면 다리가 휘청거려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걷는다.
그러나 1950년 여름, 이름조차 귀에 익지 않은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들은 18세, 20세의 홍안의 청년들로서 공산세력의 침략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에 지원했으며,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젊음의 향기에 취해서, 각기 고유의 군가를 힘차게 부르며, 지구 반대편을 향해서 떠났다.
그리고 3년 계속된 긴 전쟁에서,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사람들과 뼈 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끊임없이 쏟아지는 포탄과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전우들 속에서 운 좋게 살아 돌아왔다. 비록 그들이 지금은 귀에 보청기를 끼고 있을지라도 그들 젊음의 피를 끓게 했던 육, 해, 공, 해병대 군가를 들으면 어찌 반갑고 감개무량하지 않겠는가.
이 음악회에는 또한 워싱턴 지역의 원로 재향군인과 나이 많으신 분들을 모셨다. 지금은 연로하셨지만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이분들 모두 씩씩하고 혈기 왕성하고 야심 많은 젊은이들이었다. 총을 들고 무전기를 메고 탱크를 몰면서 전쟁의 한복판에서 싸웠던 시절이 있는가 하면 첫사랑의 연인과 남산 비탈길을 걸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에 부풀어 가슴 뛰던 때도 있었고 그런가 하면 바람 들이치는 초라한 포장마차 한구석에서 소주 한잔을 받아놓고 현실의 비정함과 괴로움에 한숨 쉬던 때도 있었다.
가수 남인수가 부른 “애수의 소야곡”을 듣고 쓰라린 가슴을 달랬는가 하면, ‘감격시대’들 듣고서는 어디서인지 모르게 힘이 불끈 솟아서 어깨를 펴고 거리를 활보하던 때도 있었다. “어서 가자 가자 바다로 가자, 출렁출렁 물결치는 명사십리 바닷가, 안타까운 젊은날의 로맨스를 찾아서, 헤이!” 하고 나오는 “바다의 교향시”와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배는 어데로 갔오,”하고 나오는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는 인생의 황혼기를 즐기는 이분들에게 한없이 많은 추억을 되살려 주지 않을 것인가.
그런가 하면 이 음악회에는 이들 한국인과 미국인 노장들의 자손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친척 아저씨와 이웃사촌을 모시고, 즐겁고 뜻 깊은 하룻밤을 선물로 드리기 위해서 그분들을 모시고 올 것이다. 6.25전쟁도 경험하지 않았고 전후의 가난과 혼란도 겪지 않았으며 이제는 고전으로 꼽히는 한국의 옛날 대중가요, 4~50년 전의 노래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전혀 취미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전화기 하나로 인터넷을 하고 일 년 스케줄을 잡고 수시로 세게 방방곡곡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려고 귀에 수신기를 늘 꽂고 다니는 이 젊은층의 관객에게 록이나 힙합은 들려줄 수 없어도 유명한 오페라에 나오는 아름다운 합창곡을 들려준다는 것은 그들 교양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워싱턴 동포는 물론 공공기관, 사설단체, 사업체, 등에서 많은 후원과 호응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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