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식도 없다.
정치인들, 특히나 평생에 대통령을 지낸 사람과 먼발치에서나마 얼굴을 대할 수 있었다면 행운일 수도 있다고 가끔 생각한다. 꿈속에라도 대통령을 봤다면 로또 복권 사야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을 갖게 하는 게 대통령의 존재다. 왕조시대도 아닌데 만나 보려고 했다면 못 만날 이유도 특별히 없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통령을 만나 본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기 직전에 미국에 왔었고, 대통령을 하는 동안에는 미국 생활로 바쁘다 보니 임기 동안에 한국 국민들이 가졌던 것처럼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썰물처럼 식어버리는 안타까움을 똑같이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던 09년 5월23일, 어느 시간대인지, 어디쯤에서 무엇을 하다가 최초로 그 엄청난 비보를 접했는지 조차 기억에 없다. 그 몇 달 전에 연예인 몇 명이 잇따라 자살해서 때로는 마음이, 더 할 때는 가슴이 저며 올 때도 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런 걸 막연하다고 해야 하나, 눈앞이 깜깜해오고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헤아릴 수 없는 낭패감에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가 도무지 황망스럽기만 하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때문에 장례기간 내내 혼자서 마셨던 기억이 오히려 또렷하다. 혼자 ‘상주’ 같은 마음으로 화면속의 노란 물결을 바라다 봤고, 유언을 곱씹어 봤다.
한국에 갈 일이 생기면 꼭 한번 가까이서 뵐 수도 있었던, 만나보는데 겉치레 격식과 절차도 없이 그곳이 논두렁이면 어떻고, 동네가게 평상 위면 어떠하리, 그런 만남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보였고 실제가 그랬었다. 퇴임 후에 정겹고 아름다운 모습의 범부로 돌아가겠다는 소박하고도 순박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들 시비가릴 일도 아니다. 소박스런 그런 길 위에 있던 당신의 바보 같은 마음을 그들은 가만두지 않았다.
당신의 이상과 꿈은 결코 꿈으로 묻기에는 너무나 고결했고, 우리들조차도 기우할 정도로 파격이고 기결이 너무나 분명하였기에 많은 국민들이 숨차했던 행복한 고민의 한 시대를 우리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이런 다수의 행복을 그들이 천박하게 질시하는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는데 말이다.
당신이 있어서 민족자존이 어떤 것인지를 보다 뚜렷하게 체험할 수 있었고,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꿈과 미래를 희망할 수가 있었다.
평생 동안 사회과학 서적하나 제대로 들춰 볼 여유가 없이 통속적 신문의 큰 글씨 몇 자 속에만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들에게 ‘생명에 대한 자애,’ ‘건강한 국가사회와 가정,’ 나아가 ‘민족과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굵고도 명쾌하게 향도하셨고, 가야만 하는 길이지만 아무도 가기를 꺼려했던 가지 않는 그 길을 홀연히 걸어가도록 바라다만 보았던 자괴감이 오늘의 우리를 이렇듯 힘들게 하고 있다.
떠나고 나서야 당신의 큰 그림자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어찌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불감당으로 여겼던 식민 36년도 헤쳐 왔던 우리이다. 부패독재와 결연히 맞설 수 있었고, 두 번에 걸친 군사쿠데타도 고쳐 잡았던 우리들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영부인이 받은 미소의 후원자금 마저도 양심에 허용되지 않았던 그 모습을 금세기에 어느 국가, 어느 사회, 누구에게서 기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향후 100년 내에는 만나기 어려울 민족적 지도자로 당신을 기억하려는 것이다.
강창구
워싱턴사람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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