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 지휘관회의가 지난 5월 4일 104명의 장군들이 참가한 가운데 전례 없는 대통령 주제로 생중계됐다. 사고가 난지 한 달이 지나도록 국민들의 의혹과 억측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의혹과 불신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반짝이는 별들이 한데 모여 자신의 실수를 밝히고 새롭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보기에도 좋은 모습이다.
그런데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군 당국과 정부 발표는 나의 의혹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전문가가 아니라도 당시의 상황과 국내외적 여건으로 봐서, 외부보다는 내부 원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군 당국이 처음부터 우물쭈물,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침몰 당시의 정보 공개 거부로 무엇인가를 숨기려 한다는 생각을 부추기고 있다. 이미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 꿰맞추는 데에 골몰하고 있다는 사람도 아주 많다. 이렇게 해서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고 의혹은 의혹을 불러오고 있다.
제발 북쪽의 소행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안보’가 통째로 거덜 난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즉 ‘생과 사’의 갈림길에 민족의 운명이 놓였다는 말이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정권 교체도 각오해야할 엄중하고 절박한 시점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215개의 별들을 향해, “경계 작전 임무 수행 중 기습을 허용했다. [...] 경계 작전의 허점을 노출했다. 적의 능력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고, 우리의 첨단무기를 과신했다”고 실토했다. 그는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인식하고 기억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다.
치욕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국방장관이 그날을 “인식이나 하고 기억하겠다”는 것으로 끝난다면 이미 책임완수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자진 사표를 내고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준비가 돼있다는 말을 먼저 했어야 한다. 유가족과 56명의 회생자들에게 엄숙히 사죄를 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비장한 뉘우침과 각오를 보였어야 마땅하다.
한편, 이 대통령은 “절대 밖에 나가선 이야기하지 말라”면서 침몰 직후 늑장보고, 잇따른 헬기 추락, 군 기강 해이 등을 예로 든 다음 “이래서 되겠느냐”고 질타를 했다. 소나 돼지가 죽어도 나에게 10-20분이면 보고가 되는데, “우리 장병들이 탄 함정이 침몰했는데 합참의장에게 49분 만에 보고가 됐다니 말이 되는냐”라며 비판했다고 한다.
이번 ‘전군 지휘관회의’의 주요 내용은 첨단무기를 과신하고 북한을 얕보다 허가 찔렸다는 자체 비판과 동시에 대북 적개심으로 무장하자는 요지였다고 보인다. 이러다간 무슨 요절이라도 날 것만 같아 오금이 저리다. 정말 이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일까?
서해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교훈은 절대로 적개심에 불타 복수를 하라는 것은 아닐게다. 그것은 지체 없이 대화를 통해 평화번영의 길로 재 진입하라는 간곡한 애원일 것이다. 10.4선언에 따라 서해 평화협력이 준수되고 있었다면 서해 참사는 아예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남북이 합심 협력해서 조기에 희생을 막았을 것이다. 이렇게 기막힌 길이 있건만, 굳이 그 길을 막아 놓고 비극을 자초하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번 ‘전군지휘관회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공사’와 다를 바 없다. 외양간에 대못이나 박고 끝낼 일이 아니다. 외양간 바닥이 진흙탕인지, 물이 솟아오르는지,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인지, 사나운 짐승들에게 노출되는지 등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외양간 공사는 헛공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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