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새 국어 사전이 나의 서재 책꽂이에 합류한 것은 극히 근래의 일이다. 그럭저럭 모아온 언어 관계 사전류는 대소 20개가 되지만 우리말 사전이 이렇듯 늦깎이가 된 것은 얼마 전 한국일보에 실린 ‘밥’이란 수필을 읽고 나서이다. 밥의 필자는 자기가 자라온 한국 농촌의 배경을 매우 아레고릭하고 참신한 필치로 우리 독자들 에게 선보여 주었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몇 개의 생소한 낱말에 부딪혔으나 무엇보다도 작가가 엮어놓은 우리글의 아름다움에 짐짓 감탄의 말이 절로 나왔다. 나로서는 그동안 우리글을 너무 안이하게 여기고 한글 공부에 나태해 있었음을 자책 하는 계기가 되였으니 기회에 이를 고백 고해하는 바 이다. 어줍사리 지나온 나날들을 해외문학 사대주의라는 늪에서 허우적거렸다는 구차한 변명은 차라리 하나의 궤변에 불가 한 줄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람이 만든 문자는 오래가지 못하고 소멸되고 말았다. 폴란드의 언어학자 제멘호후가 만든 에스페란도가 그랬고 13세기 몽고문자는 중국 중원 땅에서 밀려났고 청나라학자들이 만든 만주어는 기록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한글이 창조된 지 560년 한때 우리들 자신이 천시했고 일제 강점 하에 그 혹독했던 조선어말살 정책(필자도 그 희생자의 한사람)에도 모진 목숨 끈질기게 이어나가 드디어 21세기 하이텍 시대에 들어와서는 세계 공용의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 키 보드 안에 안성맞춤으로 아주 편안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은 실로 우리 한글의 뛰어난 효율성과 과학적인 문자구성과 우리 국문학 선구자들의 끊임없는 학문 연찬의 덕분이라 하겠다. 명예로운 군기에는 항상 영광의 탄혼이 있는 법이다
이런 과정에서 한글은 24자로 간추려졌다. 계형문자를 조상으로 한 산스크리트(범어)는 인도·독일어 계통으로 발전해 지금의 독일북방에 살고 있든 색슨과 앵글로 부족이 이 배턴을 이어받아 영국에 건너가서 형성된 알파벳은 26자요 ‘이두’ 형식으로 한문에서 따온 일본의 ‘가나’는 51자이고 중국의 한자는 4만 6천개를 웃돌고 있다. 키보드에 입력시키기엔 너무 글자들이 많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직도 한자 혼용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한문의 실효성, 예를 들어 중국 여행에서 자주 보는 측(厠)은 하나의 글자인 동시에 지붕밑에서 즉각적으로 용변을 해결한다는 화장실(toilet)이란 단어를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 실로 방대한 신조어들을 그들 광사전에 담아 놓았다. 그러는 동시에 가와바다, 오오에라는 두 사람의 노벨문학 수상자를 배출시킨 바 있다.
우리나라도 60년대 말 까지는 한문을 혼용해 써왔다. 그러나 한글전용의 여론에 밀리고 한문교육에 드는 시간낭비와 영어가 국제어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어 한글전용의 문교정책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문은 그러나 그 저변에 깔려있는 어휘가 무궁무진한 데다 입체감이 있는 장점이 있어 한문혼용의 문장은 같은 내용을 담은 영어나 독일어 또는 순수 우리 글로 만 된 문장을 두 배의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갈 수 있었으니 한문은 읽는 문장이라기보다는 눈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글이 인도네시아 찌아 찌아족에 수출되듯이 우리도 각국 외국말들을 받아들여 우리글에 퓨젼시켜 가면서 우리말의 말 밭을 넓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언어세계에서 어느 문자를 쓰느냐에 따라 뇌의 발달이 달라진다는 학설도 한번쯤 음미할 만도 하다. 서울대학교에 재직 중인 미국인 국문과 교수 카우저씨는 지금에 와서 오히려 국한문 혼용을 권하고 있다.
변만식
기윤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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