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조선·해운업이 왜 어렵다는 거죠?
불과 얼마 전까지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으로 명성을 날리던 한국의 조선업계와 해운업계가 요즘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위기가 거의 끝나간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은데요. 오늘은 조선ㆍ해운업계가 겪는 어려움과 배경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수주 잔량은 중국이 추격해 오고 신규 수주는 일본이 앞서가
‘조선업 세계 1위’ 한국 위상 흔들… 내년 이후 회복 전망
■해운은 뭐고 조선은 뭔가요
해운업은 ‘선박으로 사람이나 화물을 수송하는 사업’으로, 조선업은 ‘배를 설계하고 만드는 사업’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조선사는 해운사가 필요로 하는 선박을 공급하는 ‘공급자’ 역할을, 해운사는 조선사가 만드는 선박에 대한 ‘수요자’ 역할을 하는 공생 관계로 볼 수 있답니다.
두 산업은 역사도 깊은데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가 지중해 해상교역을 통해 인근 도시국가들 가운데 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고 신라의 장보고도 강력한 해상선단을 바탕으로 서해바다를 호령했었지요.
현대에 들어서도 해운업은 세계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량 기준으로 전세계 교역의 90%가 선박을 통해 수송될 정도니까요. 세계적인 보험사 로이드(Lloyd’s)의 작년 7월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5만3,005척의 선박이 운항 중이며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1만7,104척(32%)에 이르는 일반 화물선이었습니다.
조선업은 선박 생산으로 세계 경제성장을 이끌었습니다. Lloyd’s에 따르면 2008년 세계 조선업계가 생산한 선박은 3,242척, 수송 규모로는 6,769만 GT(gross tonㆍ총톤수ㆍ배 내부의 전체 용적을 ‘2.83㎥=1GT’로 환산하여 계산)에 달했습니다.
■한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세계 최상위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선 해운업에서는 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통계에서 한국은 총 선박수 1,235척, 규모 4,662만 DWT(dead weight tonㆍ재화중량톤ㆍ선박에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전체 무게를 의미)로 세계 6위의 해운강국으로 평가(표 참조) 됐습니다.
조선업에서는 위상이 더 높은데요.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우리나라 조선업은 289척에 1,595만 GT 규모의 새 선박을 건조해 세계 1위(표 참조)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일감을 뜻하는 ‘수주잔량’에서는 중국이 세계 전체의 34.7%로 한국(36.1%)을 바짝 추격하고 있고 ‘신규 수주규모’에서는 일본에 크게 뒤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장래 조선업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해운경기가 안 좋다면서요
해운과 조선은 앞에서 말한대로 공생관계입니다. 한쪽이 안 좋아지면 다른 쪽도 덩달아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전세계 해운경기를 한 눈에 나타내는 통계는 없습니다만, 그나마 정보접근이 가능한 분야를 통해 전체 경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수로 대표적인 것이 BDI(Baltic Dry Indexㆍ발틱운임지수)입니다.
전체 선박에서 벌크선 숫자가 15% 남짓(그래픽 참조)하고 그 중 발틱사를 통한 벌크선 임대차 거래는 당연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BDI가 얼마나 대표성을 갖는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박으로 화물을 수송할 때는 자동차나 TV를 살 때처럼 상표나 회사까지 따지는 대신, 대개 싼 비용으로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지만 고려되기 때문에 최소한 벌크선 부문에서는 BDI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벌크선이 주로 원자재 수송에 이용된다는 점에서 벌크선 서비스 수요가 줄면, 완제품을 수송하는 컨테이너선 서비스 수요도 시차를 두고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인 특성도 한 몫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최근까지의 BDI추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2003년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3년 연 평균 BDI는 2,617이었는데 2007년 최고치인 7,071을 기록한 후 하락하기 시작하여 2009년 2,617까지 떨어졌으며 2010년 3월10일 현재 3,230을 기록 중입니다. 최근 해운경기는 2007년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고 볼 수 있겠죠.
해운경기 침체는 자연히 선박 수요를 감소시키고 조선경기까지 악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해운ㆍ조선관련 연구소 클락스(Clarkson’s)에 따르면 2008년 1DWT당 886달러이던 새 벌크선 평균 건조가격이 올 2월에는 557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유조선 건조가격도 같은 기간 1DWT당 739달러에서 475달러까지 하락했구요. 컨테이너선의 경우에도 같은 기간 1TEU(twenty-foot equivalent unit의 줄임말ㆍ6m 표준 컨테이너 한 개를 의미)당 2만9,044달러에서 1만6,396달러로 역시 크게 낮아졌습니다. 똑 같이 배를 만들어도 몇 년 전보다 받는 돈이 급감한 셈입니다.
■왜 이렇게 안 좋아진 거죠
해운경기 악화는 세계경제의 성장률 저하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2007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와 2008년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 몰아 닥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그리고 2009년의 세계적인 경기후퇴는 수출입 화물 대부분을 실어 나르는 해운 수요를 크게 줄였습니다. 실어 나를 배가 필요없으니 자연히 조선 수요 역시 위축된 겁니다.
이는 앞으로 해운과 조선경기가 되살아나려면 세계경제가 성장률을 회복해야 가능하리라는 점을 뜻합니다. 현재로서는 올해보다 2011년 이후를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리스 경제위기의 영향은 없나요
선박왕 오나시스로 유명한 그리스는 세계 최대의 해운국가로 유명합니다. 작년 통계에서도 그리스는 일본에 이어 선박보유 순위 2위를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해운산업은 그리스에 남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요즘 해운강국들이 자체 수출입 수요가 많은 무역대국인 반면, 그리스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가 해운강국이 된 것은 그만큼 해운 서비스에서 남다른 경쟁력이 있었다는 뜻일 겁니다.
또 해운산업은 그리스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합니다. 그리스 국민총생산의 45%가 해운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니까요.
자연히 그리스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가 전 세계 해운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도 하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스의 경제위기가 전 세계 해운경기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가 그러했고 고대 신라가 그러했듯 해운업의 태생은 세계무대였으며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즉, 해운경기가 세계경기 변화에는 민감할 수 밖에 없지만 반대로 그만큼 특정 국가의 경기변동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음을 뜻합니다.
물론 간접적인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부정적인 대답도 가능합니다. 그리스 경제위기가 유럽전체 경제에 타격을 주고 이로 인해 유럽의 수출입이 줄어들거나 회복되지 않는다면 그 만큼 해운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조선수요 또한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
예상한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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