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독자로 오피니언 란에 게재되는 독자 시에 대해 몇 마디 의견을 말할까 한다.
R. M. 릴케는 소녀소년 시절 시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낙엽이 바람에 굴러가는 모습을 보고 깔깔 거리던 시절 감성 풍성하던 그때는 모두가 시인일 수 있다. 소위 문학 소년소녀 시절 특이한 시어로 문장을 짧게 이어가는 것이 한편의 시로 착각했던 시절 말이다.
물론 감정이나 정서는 시를 성립시키는 1차적 발상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시 누구나 구상할 수 있는 시어로 시를 쓴다면 그것은 구시대적 시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21세기를 살면서 19세기적 낭만주의적 시를 쓴다면 그것은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시적 발상을 정서를 빌어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가 객관적 사물의 해석이 아니라 주관적 체험을 통한 고조된 감정의 직접적 표출이라는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어떤 계절의 정경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대로 서술한 서정적 진술은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 정서 자체가 시가 아니라 정서를 미적 감동을 수반하는 정서로 환기시켰을 때 비로소 시로 성립되는 것이다.
감정이 새로운 감정으로 이동 전이되면서 첨가되고, 여과되고, 순화, 승화되면서 구체화 되어야 비로써 감동의 시 한편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습작 초보자들은 어떻게 하면 정서에 몰입하느냐 하는 시적 역행에 빠져들어 19세기 낭만주의 시로 물러서고 있음을 본다.
시 한편을 분만하기 위해서는 어느 여인이 아이를 배듯 감각 기능에 의해 체험된 것들이 우리의 의식이나 뇌리에 잉태되어야 할 것이고 잉태된 한편의 시를 밤을 세워가며 진통의 진통을 겪고 이를 악물고 소리를 속으로 삭이던 그 새벽에 비로소 한편의 시를 탄생시켜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낱말로 짧은 문장을 열거하는 것이 시라고 착각함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역겨움을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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