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불효자가 하와이에 사시는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하와이! 낭만과 사랑이 깃든 곳. 와이키키 해변 야자수 아래서 코발트 빛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부드러운 무역풍을 타고 사랑하는 님이 어느새 다가올 것만 같다. 그러나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알로하오에’를 부르면 향수와 슬픔에 빠져드는 사연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다른 많은 한인들이 그렇듯이 우리가족의 애환도 깃들어 있다. 홀로 미국유학을 오셨던 아버님은 하와이에 정착하셨다. 온 가족이 하와이에서 다시 합치기까지 수년간, 남은 가족 모두는 하와이를 그리며 살았다.
한국에서 의대 재학 중이던 나는 학업을 마치기 위하여 다시 가족들과 떨어져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다. 졸업 후 미국에서 정착을 못하고 있을 때, 와이키키 해변에 있는 야자수 밑에 누워 하늘을 쳐다 볼 때가 종종 있었다. 나무 사이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하얀 구름이 고향 떠나 방황하는 내 처지 같았었다. 또 팜트리 가시는 왜 그렇게도 따가웠는지!
하와이 한인이민 역사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대표가 고종황제로부터 이민 허락을 받은 후 1902년 12월22일 한인 121명이 제물포에서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떠났다. 그 날 뱃고동소리는 구성지고, 떠나는 사람 보내는 친지들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사탕수수 노동자로 이민 첫발을 디딘 우리 선조들은 채찍으로 맞으며 사탕수수에 찔리며 중노동을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노총각들이었고 그 때 사진결혼이 시작되었다. 첫 이민선 이래 10여년이 흐른 후 사진신부들은 신랑 만날 희망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러나 막상 하와이에 도착해 만난 신랑은 사진과는 영 딴판이었다. 나이도 더 많고 머리카락도 없고 볼품없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배 삯을 물어낼 수도 없는 가난 때문에 사진신부들은 억지로 결혼해서 살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열매를 맺은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가 이언호 작가의 ‘사진신부의 사랑’ 이라는 작품에 잘 그려져 있다. 그 때의 사진신부와 노동자들 중 독립운동 성금을 보낸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가족은 이민초기 사진신부 중의 한 분이었던 고 양남수 할머님으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분을 비롯한 이민 개척자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하와이에 첫발을 디딘지 사반세기 만에 다시 와이키키에 와 보니 감회가 새롭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신혼여행 중인 부부를 만났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고 물으니 인터넷으로 만나 사랑을 싹 틔었다 한다. 하루에도 몇시간 씩 인터넷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랑이 영글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판 사진신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흘러 통신기술은 바뀌었어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함을 느꼈다. 신부에게 신랑을 인터넷으로 보다가 실물로 처음 보았을 때의 소감을 물어 보았더니 많이 달랐다고 했다.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화상으로 보아왔는데도 달랐다니, 참 재미있고도 의아했다. 우리 모두는 머릿속에 있는 백마 탄 왕자와 장미 같은 백설공주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와이키키 해변의 모래는 아직도 곱고, 코발트색의 파도는 예전과 같이 끊임없이 미인들의 친구가 되어준다. 물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가는 세월 속에서 늙지 않고 언제나 푸른 꿈을 가진 청년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해변 앞에 있는 상점 거울 속에 비쳐진 나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머리는 희어져 있고 얼굴은 왜 이리도 달라졌는가?
오랜만에 뵌 부모님의 모습에서도 이민초기의 씩씩함은 없어지고 노인의 모습만이 역력하다. 해변에 앉아 지나간 세월들을 돌아보며 부모님과 같이 ‘알로하오에’를 불렀다.
떨어지는 해가 유난히도 붉게 보인다. 붉은 해가 물기 때문에 흔들려 보인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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